일본 전국시대의 대표적 무장이자 영주인 다케다 신겐은 정벌 전쟁 중 급사했다. 그는 3년간 죽음을 숨기라면서 자신과 닮은 대역인 ‘카게무샤’(그림자 무사)를 쓰라고 했다. 좀도둑 출신 카게무샤는 신겐 못지않은 용병술로 적을 막아낸다. 하지만 1년 후 그의 정체가 들통나 쫓겨나자 다케다의 무적 기마군단은 전멸한다.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 ‘카게무샤’의 줄거리다.

▶실제로 신겐은 자신과 닮은 동생 2명을 카게무샤로 뒀다. 카게무샤가 얼마나 연기를 잘했던지 그의 죽음을 확인하러 온 다른 영주의 사절이 깜짝 속아 넘어갔다. 당시 영주들은 카게무샤를 전쟁 등에 대신 내보내는 위장 전술을 썼다. 중국에선 제갈량이 자신과 닮은 대역 장수를 내보내 적을 교란했다. 신라 김춘추가 고구려군에 붙잡혔을 때 수행원인 은군해가 대역으로 나서 그의 목숨을 살렸다. 고려 왕건이 공산성 전투에서 포위됐을 땐 장수 신숭겸이 그의 옷을 입고 싸우다 죽었다. 임진왜란 때 의병장 곽재우는 10명의 대역을 써서 왜병을 격파했다.

▶이라크 대통령 사담 후세인은 최소 3명의 ‘가짜 후세인’을 뒀다. 성형수술까지 한 가짜들이 공식 석상에서 대역을 했다고 한다. 리비아의 독재자 카다피도 미군 폭격과 암살을 피하려 가짜를 내세웠다. 한때 북한 김정일이 자신과 닮은 2명의 대역을 뒀다는 얘기가 나돌았다. 김정은도 신변 이상설이 돌 때마다 어김없이 카게무샤 설이 나온다.

▶사람만 카게무샤가 있는 게 아니다. 무기도 ‘디코이’(decoy·미끼)라는 대역이 있다. 상대 공격이나 탐지, 요격을 피하기 위해 잠수함이나 항공기, 미사일 등은 가짜 표적인 ‘더미’를 내보낸다. 1999년 코소보 분쟁 때 나토군은 78일간 세르비아군을 맹폭했는데 나중에 보니 가짜 탱크와 항공기였다. 1944년 노르망디 상륙작전 때 연합군은 대규모 공수부대 인형을 타 지역에 투하했다. 북한은 폭격에 대비해 가짜 무기 모형을 곳곳에 배치하고 있다. 우리 군도 비닐로 만든 탱크를 선보였다.

▶낙상 사고를 당한 민주당 이재명 후보의 아내 김혜경씨를 두고 갑작스러운 ‘카게무샤’ 논란이 일고 있다. 검은 망토와 모자 마스크 선글라스 차림으로 이 후보 집에서 나온 여성을 김씨로 오인한 것이다. 영화 스타워즈의 다스베이더를 연상시킨 이 여성은 당에서 보낸 수행원이었다. 그가 먼저 나와 차를 타자 취재진은 그를 뒤쫓았다. 하지만 김씨는 그 직후 나왔다. 야당에선 언론을 따돌리기 위한 ‘여사님 카게무샤’냐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