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20년 전 입대한 지 얼마 안 됐을 때다. 내무반에서 각 잡고 앉아있는데 대구 출신 한 선임이 물었다. “야, 너 노무현 노씨지?”라며 온갖 욕설을 했다. 놀라서 “부모님 모두 경북 문경 사람”이라고 답했다. 며칠 뒤 광주 출신 선임이 TV를 보다가 “야, 너 노태우 노씨냐?”라며 거친 표현으로 몰아붙였다. 정신을 차리고 대답해 욕을 덜 먹을 수 있었다. “저는 광주 광산 노씨입니다.”

5·18 단체 관계자들이 지난달 17일 서울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을 방문해 민주화 운동을 진압하다 숨진 계엄군 묘역에 참배하고 있다./김지호 기자

두 선임은 두 노(盧) 대통령에 대해 자기가 아는 것 말고 다른 의견은 아예 들으려 하지 않았다. 이 둘은 툭하면 치고받고 싸우기도 했다. 그 사이의 후임들만 애먼 고생이었다. 쭉 서울에서 학교에 다니다 군이라는 ‘작은 한국 사회’에 들어가 처음으로 몸소 겪은 지역주의·정치 이념 갈등 사건이었다. 골이 그렇게 깊은 줄 미처 몰랐다. 취재를 하다 보면 이때의 기억이 종종 떠오른다.

얼마 전에도 그랬다. 지난달 17일 광주 5·18 관련 세 단체가 5·18 민주화 운동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숨진 계엄군의 묘역을 공식 참배했다. 역사적인 일이었다. 5·18 희생자 측이 군경의 묘를 찾은 것은 1980년 5·18 발생 이후 43년 만이었다. 그냥 벌어진 게 아니다. 5·18 시민군 상황실장의 용서 메시지, 그리고 시민군을 진압한 특전사 대원들의 5·18 단체 사죄 방문 등 양측의 진심 어린 노력이 이어졌기에 가능했다. 5·18 부상자회 황일봉 회장은 통화에서 “명령을 따르다 숨진 이들도 피해자 아니겠느냐. 그간 어디 가서 말도 못 하고 얼마나 힘들었겠느냐”면서 “호국 영령과 5·18 민주 영령의 슬픔을 함께 풀어나가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오늘의 참배가 용서와 화해, 그리고 국민 대통합의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참배 당일은 물론 전후로 여야 정치권은 조용했다. 광주에 각별한 더불어민주당에서도, 그간 ‘서진(西進) 정책’을 강조하며 주목을 받은 국민의힘에서도 별다른 반응이 나오지 않았다. 혹시나 이번 오월 단체의 군경 참배에 대한 뒷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 싶어 지난 대선 때 동서 화합을 강조했던 한 의원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그런 일이 있느냐”며 관심 자체가 없어 보였다. 5·18 민주화를 강조해온 한 매체는 ‘군경이 제대로 된 사죄도 안 한 상태에서 일부 5·18 간부들이 일방적으로 군경 묘역에 참배하는 것”이라며 되레 비판조로 기사를 썼다. 계엄군 특전사 측이 5·18 어머니회를 찾아가 눈물을 흘리며 사죄한 것에 대한 언급은 쏙 뺐다.

특전사 동지회는 이달 말 5·18 단체들의 안내를 받으며 5·18 민주 묘지를 공식 참배할 계획이다. 오월의 아픔은 여전하고, 양측의 참배 결정 과정도 부족했을 수 있다. 그래도 조금이나마 앞으로 나아가려는 이들의 용기 있는 발걸음을 격려해 주는 것이 5·18의 정신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