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경기도지사는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초반전에서 별 재미를 보지 못했다. 배우 김부선씨 논란에 대해 “바지 한번 더 내릴까요”라고 발끈했다가 십자포화를 맞았다. 대표 공약인 ‘기본소득’ 논란에서도 여야 후보들의 잇단 견제구에 휘청거렸다. 평소의 ‘사이다 이재명’은 사라지고 ‘식은 고구마’ 같다는 지적이 나왔다. 확고부동의 1위 후보라는 지위까지 위협 당하고 있다. 중반전부터는 이 지사가 수세적 모습에서 벗어나 이전의 ‘공격적 사이다’로 복귀할 거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 지사가 14일 이낙연 전 대표를 때리고 나선 것도 그 신호탄으로 해석된다. 후속 카드는 문재인 정부와의 차별화 전략이 될 거라는 관측이 유력하다.
이 지사 캠프에선 이번 예비경선에서 이 지사의 태도나 전략 모두 실패였다는 자책성 평가가 많이 나왔다고 한다. 후보 토론회 과정에서 이 지사 특유의 날카롭고 선명한 논리를 보여주지 못했고, 네거티브 대응에서도 화를 내는 등 성숙하지 못한 모습을 보였다는 것이다. 특히 김부선씨 논란은 의혹 자체의 진실 여부를 떠나 거기에 대응하는 이 지사의 태도에 문제가 있었다는 지적이 많다. 김씨가 연일 이 지사를 비판하는 상황에서 대응 논리를 제대로 개발 못하고 즉흥적이고 감정적 대응했다는 것이다. 자신과 관련한 논란에 좀 더 겸허하고 자성하는 모습을 보였다면 이렇게 논란이 커지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토론 과정에서 예전과 달리 상대 후보의 공격을 맞받아치기 보다는 수비적으로 대응했는데, 이 또한 그리 좋은 점수를 받지 못했다. 1등 후보가 되면 대인배 같은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다는 전략적 판단에 따른 것이지만, 토론 평가에서 3등 안에도 들지 못하는 결과를 낳았다. 특히 이 지사는 대표 공약인 기본소득이 다른 후보들에게 집중 공격을 당하자 ‘제1 공약’에서 ‘제2 공약’으로 후퇴해 버렸다. 윤희숙 의원과의 기본소득 공방에서도 한 발 밀리는 듯한 인상을 줬다. 더구나 ‘기본 시리즈’ 중 하나인 ‘기본 주택’ 공약을 박용진 의원이 추궁하자 “나도 위치를 모른다. 인터넷에서 찾아보라”는 취지로 말했다가 자기 공약의 기본적 팩트도 파악하지 못하는 것이냐는 비판을 받았다. 이 지사가 ‘바지’와 ‘기본’이라는 자기 함정에 빠져 선두주자로서의 입지를 굳히는데 실패한 것이다.
이런 상황은 예비경선 결과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여권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 지사는 이번 예비경선에서 1위를 했지만, 2위인 이낙연 전 대표와 격차가 예상보다 좁혀졌다고 한다. 얼마 전만 해도 각종 여론조사에서 이 지사와 이 전 대표의 지지율은 15% 포인트 이상 격차가 났지만, 이번 예비경선에선 5~10% 차이로 줄었다는 얘기가 나온다. 득표율도 과반에 크게 못미쳤다고 한다. 본경선에서 과반 득표를 얻어 결선투표 없이 곧바로 대선으로 직행한다는 압도적 1위 전략에 빨간불이 켜진 것이다.
최근 다른 여론조사에서도 이 지사와 이 전 대표의 지지율 격차는 상당히 줄었다. 친문 진영 일부가 이 지사를 견제하기 위해 이 전 대표에 대한 전략적 지지로 돌아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친문 전체가 이 전 대표를 이 지사의 대항마로 총력 지지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 지사가 이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면 대세론 자체가 허물어질 수 있다.
이 지사는 14일 “나한테 가족, (검증) 그걸 막으려 하는 거냐고 말한 분이 진짜로 측근 또는 가족 얘기가 많지 않느냐. 본인의 주변부터 먼저 돌아봐야 한다”며 이 전 대표의 옵티머스 관련 의혹을 제기했다. 그동안 상대방에 대한 공격을 자제했던 이 지사가 특유의 돌직구식 공세를 재개했다. 이 전 대표가 부인 김혜경씨와 배우 김부선씨 관련 논란에 대해 우회적으로 비판하자 정면으로 맞받아치면서 전략적 변화를 보인 것이다.
이 지사는 그동안 문 대통령과 친문에 대해선 직설적 발언을 피해왔다. 이 지사측 핵심 관계자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벌써부터 문 대통령이나 친문과 각을 세우면 경선을 치르기 힘들다. 차별화된 이재명은 대선후보가 된 이후 본선에서 보여줄 것”이라고 했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변화 기류가 감지되고 있다. 이렇게 ‘김빠진 사이다’로 가다간 기존 지지층과 중도층이 돌아설 수도 있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과 본격적인 차별화는 아니지만 일부 정책과 노선에서 ‘이재명류’를 보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 지사도 “문재인 정부의 잘못된 점은 고치고 필요한 것은 더 하겠다”고 했다. 또 “내가 친문과 거리가 있는 것은 사실이고, 정권 심판에서 비켜나 있다는 것도 일리가 있다”고 했다. 본인은 친문과 다르고 정권심판론에 끌려들어갈 우려가 없는 ‘비문 후보’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캠프 일각에서는 “부동산과 일자리 문제 등에서 문재인 정부의 정책적 실패를 지적하고 차별화된 정책 대안을 조기에 낼 필요성이 있다”는 말이 나온다. 문 정부와 차별화된 정책 카드로 ‘사이다 이재명’을 복원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다만 문 대통령 및 친문과 정면 충돌이나 전면전으로 나갈 생각은 크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문 대통령의 힘이 여전히 강하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의 국정수행 지지율은 40%에 가깝고 이 지사 지지율보다 높다. 차별화를 잘못했다가 친문과 호남표를 잃으면 경선도 위험해 진다. 이 지사가 문 정부의 핵심 정책 실패만 지적하면서 한발 한발 차별화를 하다가 후보 경선 막바지에 자기 노선을 명확히 하는 ‘단계적 차별화’로 나갈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