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광화문에서 일하는 30대 직장인 A씨는 오전 6시 40분 경기도 용인의 자택을 나선다. 마을버스를 타고 나가 광역버스로 갈아타고 사무실에 도착하면 80분이 흐른다. 한 해 600시간 넘게 버스 안에 갇힌다. A씨는 “출퇴근이 힘들어 하루에도 몇 번씩 자괴감이 든다”며 “서울 집값은 2배 넘게 비싸고 직장을 집 근처로 옮길 수도 없으니 지옥에 갇혀 도망도 못 가는 팔자”라고 했다.
경기도에 살며 서울로 출퇴근하는 사람이 얼추 100만명이라고 한다. 이들이 왕복으로 하루 평균 135분 정도씩 통근에 쓴다는 조사 결과가 있다. 길 위에서 영혼이 털린다는 하소연이 꽤 들린다. 김포에 살며 2량짜리 ‘골드라인’을 이용하는 학교 후배는 “다른 사람과 밀착돼 뼈가 눌리고 옷이 구겨진다”며 “오죽하면 ‘골병라인’이라고 하겠냐”고 했다.
출퇴근만 고달픈 게 아니다. 경기도에 사는 지인들은 ‘서울에서 멀어진다’는 두려움을 느낀다고 한다. 경제적 격차가 점점 벌어져서 불안하다는 얘기다. 1인당 지역총생산(GRDP)으로 경기도는 서울보다 35%나 적다. 지난달 아파트 평균 거래 가격이 서울은 14억원을 넘겼는데, 경기도는 5억6000만원대다. ‘대한민국 열차’의 2등칸에 탄 기분을 느끼는 이들이 서울 바깥에서 점점 늘고 있다. 남양주에 사는 지인은 초등학생 아들한테 “넌 나중에 서울에서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며 싱겁게 웃는다.
서울은 감량했고, 경기도는 비대해졌다. 1995년에는 서울 1055만명·경기도 778만명이었는데, 올해는 서울 932만명·경기도 1371만명이 됐다. 30년 사이 서울은 12% 줄고, 경기도는 76% 늘었다. 서울 집값을 견디지 못해 튕겨지듯 경기도로 나가는 사람이 적지 않고, 수도권으로 올라오는 지방 사람들 가운데 서울을 뚫기가 버거워 경기도에 자리 잡는 경우도 많다.
거대해진 경기도를 이렇게 접근해보면 새롭다. EU 회원국 27국 가운데 경기도보다 인구가 많은 나라는 독일·프랑스·이탈리아·스페인·폴란드·루마니아·네덜란드 7국밖에 없다. 나머지 20국은 모두 경기도보다 작다. 30년 사이 경기도는 스웨덴·벨기에·오스트리아·체코·그리스·포르투갈·헝가리를 모조리 인구로 추월했다. 사람 숫자로는 이미 웬만한 국가가 되고도 남는다.
사람이 많이 모여 살면 권력이 생긴다. 이제는 경기도가 대한민국 정치를 좌지우지한다. 1992년 총선 때는 서울 44석·경기도 31석이었지만, 2024년 총선에서는 서울 48석·경기도 60석이었다. 그 사이 영남은 6석 줄었다. 이런 구도 자체가 우파 정당에 불리하다. 주류에 반감이 크고 세상을 한 번쯤 뒤집어엎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가진 이들이 서울보다는 확실히 경기도에 더 많이 산다. 경기도의 메인 스트림은 ‘4050 진보’다. 작년 총선에서 경기도 60석 중 민주당이 53석을 석권했다. 가져간 의석 비율로는 호남의 선거 결과와 크게 다르지 않다. 계엄이니 탄핵이니 하는 것과 무관하게 운동장이 구조적으로 좌파 정당에 유리하게 기울어졌다.
인간의 관심은 동선(動線) 안에 갇히게 마련이다. 국회 보좌진들 이야기를 들어봤다. 국민의힘 주류인 영남 의원들은 서울 강남에 사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일하는 곳은 여의도다. 지역구 왕래는 대개 KTX를 이용한다. 야당 금배지들이 강남~여의도~영남을 오가는 동안 경기도에 사는 우리 국민 27%에 해당하는 이들의 삶이 시야에 얼마나 들어오는지 궁금하다. 서울 바깥에서 맴돌 듯 살아가는 이들의 마음속에 응어리가 커지고 있다. 이걸 풀어주려고 노력해야 우파 정당에 길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