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지난 23일 봉하 마을을 찾아 눈물로 참배한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은 13대 국회 초선이었다. 1987년 6월 민주화 운동 이후 그해 10월 개헌이 이뤄졌고, 이듬해 총선으로 13대 국회가 탄생했다. 87년 체제가 지금 22대 국회까지 이어지고 있으니, 13대 국회는 ‘K민주주의의 초대 국회’라 할 수 있다.
이 개헌은 대통령 직선제·5년 단임제 도입 외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언론·출판·집회의 자유를 보장하고 검열도 금지해 표현의 자유를 넓혔다. 국회 국정감사권도 되살려 행정부를 견제할 수 있게 했다. ‘권력은 나눌수록 안전하고, 국민의 권리는 넓힐수록 민주주의가 발전한다’는 역사적 교훈을 새겼다.
이러한 정치적 토대, 사회적 분위기에서 노무현을 비롯해 이인제·이해찬 등 야당 정치 신인들이 13대 국회에 대거 입성했다. 국회 상임위원장 몫을 의석수에 따라 배분하는 관례도 이때 만들어졌다. ‘여소야대’였기 때문이라 하지만, 그걸로 다 설명되진 않는다. 여당은 125석으로 원내 1당이었고, 야권은 다 합치면 과반이지만 지역 기반과 성향이 제각각인 3개 정당으로 분열돼 있었다. 노태우 대통령을 비롯해 야당 ‘3김’이 줄 건 주고 받을 건 받는 타협과 협치의 마음이 있었기에 ‘승자 독식’을 버리고 ‘대표성과 비례성’이라는 민주주의 원칙을 지킬 수 있었다.
이 관례는 발전해 나갔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인 2004년 17대 국회에서 국회의장은 원내 1당이, 입법 최종 관문을 지키는 법사위원장은 2당이 맡는 관례가 더해졌다. 당시 여당은 의석 과반을 차지했는데도 법사위원장을 야당에 양보하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당시 여당 초선 중 하나가 정 대표다.
정 대표는 지난 23일 참배에서 “노짱님, 노사모 아이디 ‘싸리비’ 정청래입니다. 제가 지금은 민주당 당대표입니다”라고 고인에게 인사했다. 많은 사람이 노무현을 좋아하는 건 그가 정치적 유불리를 따지는 계산적 인간이 아닌 ‘바보 노무현’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지역주의를 타파하겠다”며 여러 차례 험지인 부산에 출마해 낙선을 거듭했고, 대통령이 되어서는 지지층의 거센 반발을 무릅쓰고 이라크 파병, 한·미 FTA 체결, 제주해군기지 건설 같은 결단을 내렸다.
정 대표는 대통령 탄핵으로 집권한 이재명 정부의 여당 대표이고 올 8월 연임도 내다보는데, “국민이 아닌 당 강성 지지자들만 본다”는 비판을 받는다. 국회 후반기에는 상임위 18개를 모두 여당이 갖겠다고도 했다. 노무현 정부 때 여당 대표였던 정대철 헌정회장은 “야당이 분열돼 있다고, 당 지지율이 낮다고 ‘오호라 잘됐다, 바로 이때다, 힘을 못 쓸 테니 지금 확 밟아버리자’는 건 민주주의가 아니다”라고 강하게 질책했다. ‘바보 노무현’은 지금의 ‘싸리비 정청래’를 어떻게 바라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