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BTS 광화문광장 공연에서 아리랑 공연을 선보인 우리 국악단과 유지숙 국립국악원 민속악단 예술감독(앞줄 왼쪽에서 세번째)./넷플릭스

지난 21일 방탄소년단(BTS)의 서울 광화문광장 공연에서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은 대표적인 장면은 무엇이었을까. 광화문을 배경으로 국립국악원 단원들이 부른 ‘아리랑’을 꼽는 사람이 많다. 이 노래가 이토록 세계적인 노래가 됐다는 사실에 새삼 감격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이미 2012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됐고 60여 종 3600여 곡이 전승되고 있는 ‘아리랑’ 중에서도 BTS 공연에 쓰인 ‘아리랑’이 과연 어떤 노래냐는 것이다. 그건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로 시작해 “십 리도 못 가서 발병난다”로 끝나는,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아리랑’이었다. ‘본조 아리랑’ ‘신아리랑’이라고도 불리는 노래다.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는 한 사람의 이름을 떠올려야 마땅하다. 춘사 나운규다.

꼭 100년 전인 1926년, 스물네 살 나운규는 항일 민족 영화이자 무성영화 시대의 최고 걸작으로 꼽히는 ‘아리랑’을 개봉했다. 혼자서 감독·원작·각색·주연의 1인 4역을 맡았다. 이 영화의 주제가가 바로 BTS 공연에 등장한 그 ‘아리랑’이었다. 작사 나운규, 작곡은 단성사 음악대였다.

지금까지 알려진 ‘아리랑’ 중 가장 오래된 것은 미국인 호머 헐버트가 1896년 채보한 ‘아리랑’이다. 하지만 영화 주제가인 ‘아리랑’은 함북 회령 출신인 나운규가 어린 시절 철도 노동자들이 부르던 구슬픈 ‘아리랑’의 기억을 되살리고 재해석해 민족의 정서를 담아 만든 신곡이었다. ‘아리랑’이 한반도 전역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게 되자 영화음악이 전국 민요로 변한 희귀한 예였다.

영화 ‘아리랑’의 개봉일이 1926년 10월 1일이라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그날은 조선총독부 청사 준공식이 열린 날이기도 했다. 나운규는 이날 영화 선전대가 단성사에서 광화문통까지 행진하며 주제가 ‘아리랑’을 연주하도록 했다. ‘아리랑’ 자체가 일제에 저항하는 의미였던 것이다. 당황한 총독부가 주제가를 실은 전단지 1만 매를 압수했으나 극장으로 몰려드는 인파를 막을 수는 없었다. 100년 뒤 그 총독부 청사가 철거된 자리 앞에서 다시 부른 ‘아리랑’ 노래가 세계로 전파된 것이다.

나운규는 한류와 K컬처의 부흥을 일찌감치 내다본 선각자였다. 1936년 11월 잡지 ‘삼천리’의 대담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세계 각국 사람이 다 느낄 수 있는 공통된 감성을 잘 붙잡아, 조선의 산하와 정조를 기조로 하고 (콘텐츠를) 만들어낸다면 세계 시장 진출에 어렵지 않을 줄 알아요.” “우리 속에서도 명배우가 나고, 명감독이 나고, 큰 문호가 나서 본질적으로 그네들을 이길 생각을 해야겠어요.” 이듬해 나운규는 요절했지만 세월이 흐른 지금 그의 말은 현실이 됐다. BTS 공연이 끝날 무렵 이렇게 외치고 싶었다. “보고 계십니까, 나운규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