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관에 사과한 상의 부회장 -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이 9일 열린 ‘경제단체 긴급현안 점검회의’에서 “대한상의 자료는 공적 책무를 망각한 사례”라며 “자료 작성·검증·배포 전 과정에 대해 감 장관에 사과한 상의 부회장 사에 착수했다”고 말했다.(왼쪽 사진) 이 회의에 참석한 박일준 대한상의 부회장은 “대한상의를 대표해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사과드린다”며 허리를 숙였다. /연합뉴스

“준법감시팀에서 어제도 찾아와 꼬치꼬치 묻더군요. 오류 데이터 나갈 위험이 없느냐고요.”

‘X(옛 트위터)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라는 말은 과장이 아니었다. 한 금융사 관계자는 대한상공회의소가 ‘가짜뉴스’ 논란에 휩싸인 뒤 대외 자료를 낼 때마다 사내 긴장감이 극심하다고 했다. 숫자 하나라도 삐끗했다가는 대통령의 X에서 노골적인 공개 질타를 받을 수 있다는 공포 때문이다.

논란의 발단은 대한상의가 지난 3일 발표한 ‘상속세 부담에 자산가 유출 세계 4위… 납부 방식 개선이 현실적 해법’이라는 보도자료였다. 이 자료는 영국 이민 컨설팅업체 헨리앤파트너스의 ‘부의 이동 보고서’를 인용해 한국의 자산가 순유출 규모가 2024년 1200명에서 2025년 2400명으로 크게 늘었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 수치는 각국의 투자이민 프로그램, 고급 국제 이사 업체 통계 등을 통해 추정한 값으로, 산출 방식이 불투명하고 추계의 정확성에도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7일 X에서 해당 내용을 ‘가짜뉴스’라며 직격 비판했고, 주요 경제 부처 장관들까지 즉각 감사와 책임 추궁을 예고했다. 이런 분위기에 각종 통계와 전망치가 많은 금융권은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한 금융사 관계자는 “보도자료에 포함되는 수치와 통계는 법무·IR·리스크 부서의 교차 검토를 의무화하고, ‘숫자 포함 자료 필수 검증’ 체크리스트 도입을 논의 중”이라고 했다.

이재명 대통령 X 글. /X 캡처

그런데 문제는 대통령이 대한상의 자료를 비판하며 “사익 도모와 정부 정책 공격을 위해 가짜뉴스를 생산해 유포하는 행위”라고 한 대목이다. 금융권은 ‘부자’ ‘부동산’ ‘세금’ 같은 민감한 키워드가 들어간 분석 자료가 정책에 대한 공격으로 읽힐까 봐 사전 정무적 판단을 강화하고 있다. 한 금융사 관계자는 “외부 시선을 의식하다 보니 보고서 발간에 극도로 신중을 기하거나 표현을 완화하는 경우가 늘었다”고 전했다.

신빙성이 떨어지는 수치를 충분한 검증 없이 인용하는 것은 분명히 잘못이다. 민간 단체든 금융사든, 정책 논쟁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자료라면 더 엄격한 검증을 거쳐야 한다. 이번 일을 계기로 데이터 검증 체계가 강화되는 것은 긍정적인 변화일 수 있다.

그러나 숫자를 둘러싼 논쟁이 곧바로 ‘가짜 뉴스 낙인’과 ‘정책 공격 프레임’으로 이어진다면 현장의 자율적 분석과 토론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오류는 바로잡으면 된다. 그러나 두려움 속에서 아예 입을 닫게 된다면 그 사회는 토론의 공간을 스스로 좁히는 셈이다. 데이터 검증은 강화하되 해석의 자유까지 억압한다면 안 되지 않을까. 권력자의 한마디가 자료 생산의 방향을 좌우하는 순간 시장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질 것이다. 냉엄하게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분위기가 과연 건강한 경제 생태계에 이로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