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2월 31일 경기도 용인시 에버랜드 케데헌(케이팝데몬헌터스) 팝업에서 외국인 무용수들이 갓을 쓰고 춤을 추고 있다./고운호 기자

유튜브에서 한국 식당을 찾은 외국인이 밥과 고기를 상추쌈으로 가득 싸서 먹는 장면을 흔히 볼 수 있다. 그런데 그들이 그 쌈을 중간에서 베어 물기라도 하면 댓글 창엔 불이 나게 마련이다. ‘안 돼 하지 마’ ‘노!’ ‘네버!’ ‘으악’은 예사고 ‘입을 크게 벌려 한입에 먹어야지!’라는 절박한 훈수가 줄을 잇는다. 기자도 그 장면 앞에선 저절로 비명이 나왔다.

그런데 그것은 혹시 ‘K컬처는 모름지기 이래야 돼’라는 고정관념에서 나온 것은 아닐까. 체코 프라하의 한식당에서 옆자리에 앉은 현지인 남성 두 명이 양념닭강정과 밥을 시킨 뒤 맥주도 없이 식사하듯 먹는 것을 봤다. ‘세상에 누가 저렇게 먹는담?’이란 생각에 흘깃 고개를 돌렸더니 그들은 참 맛있다는 표정으로 열심히 먹고 있었다.

“이제 K컬처의 ‘K’라는 접두사는 더 이상 ‘한국의’라는 뜻으로 이해해선 안 됩니다.” 코로나가 한창이던 2022년 화상으로 인터뷰한 조지은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가 이런 말을 했다. “그것에는 재미(fun) 있고 쿨(cool)하고 현대적(contemporary)이며 혼성체(hybrid)인 동시에 역동적(dynamic)이란 의미가 담겨 있어요.” 아직 ‘흑백 요리사’도 ‘아파트’도 ‘케이팝 데몬 헌터스(케데헌)’도 나오지 않은 때였다.

K컬처를 한국만의 문화로 생각하고 한국이 그것을 독점하려 하면 안 되는 단계에 이미 이르렀다는 얘기였다. 한국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졌지만 세계 사용자가 향유하며 재생산하는 국제적 문화가 됐으니 그 나름의 생명력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학창 시절 귀가 닳도록 들어 온 “어디서 이런 근본 없는” ”야, 거기 지방 방송 꺼" 같은 핀잔이 통했던 사고방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도달한 셈이 아닌가.

‘그런가’ 생각하며 한동안 잊고 있었던 조 교수의 말이 다시 생각난 것이 요즘이다. ‘케데헌’ 주제가가 그래미상까지 거머쥐었다. ‘삼국유사’의 비형랑을 연상케 하는 반인반귀(半人半鬼) 혼혈 주인공이 등장해 ‘벽을 부수고, 있는 그대로의 나를 보여주겠다’고 외친 ‘케데헌’은, 지금껏 한국 문화의 변방 정도로 여겨졌던 재미(在美) 한국계가 재해석한 글로벌 감수성의 K컬처였다. 그 코스모폴리탄의 시각에서 호작도와 한양도성과 목욕탕은 생각지도 못한 생명력을 얻었다.

K푸드를 소재로 최근 해외에서 등장한 ‘꿀떡 시리얼’이나 ‘회오리 오이무침’ ‘불닭볶음면 오믈렛’ ‘바나나커피우유’ 같은 변형 음식들은 우리 눈에는 영락없는 괴식(怪食)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조 교수가 말한 ‘재미있고 쿨하고 현대적이며 혼성체인 동시에 역동적’이라는 ‘K’의 의미에 꼭 들어맞는 콘셉트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면 이제 쌈 중간을 베어 물거나 양념닭강정을 반찬으로 먹는 외국인을 봐도 이해하려 해야 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