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서울 종로구 서울경찰청 민원실앞에서 시민단체 회원들이 '국민의 명령! 75만 공무원도 내가족이다', '범죄자 취급 하지마라 이것이 내란이다' 등 플래카드를 들고, 헌법 존중 정부 혁신 TF팀 구성을 당장 중단하라며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뉴시스

얼마 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우연히 모 부처 간부를 만났다가 저녁 식사까지 했다. 20여 년간 주요 보직을 거친 그는 실력파 ‘늘공(직업 공무원)’의 상징이었다. 그런데 어깨가 축 처져 있었다. 하소연을 들었다. “이재명 대통령이 공무원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할 줄은 몰랐습니다. 공직 생활에 회의감이 든다는 동료가 요즘 많아요.”

정부가 지난 11일 중앙행정기관 49곳에 ‘헌법존중 정부혁신 TF(태스크포스)’를 설치해 전방위적으로 내란 가담자 색출 조사를 벌인다는 발표에 대한 토로였다. TF는 특검 수사망에 걸리지 않은 공무원들을 솎아내겠다는 취지다. 부처 내에 ‘제보 센터’를 두고 동료끼리 손가락질하게 만들었다. 휴대폰도 제출해 무슨 문자를 보냈는지 검열받게 했다.

문재인 정부 때도 ‘적폐 청산’이란 이름으로 임시 조직이 영장도 없이 공무원들 카카오톡 내역을 들여다봐 사적 대화가 유출된 적이 있다. 당사자들은 괜한 오해를 받았고 별건으로 인사상 불이익까지 받는 사례가 잇따랐다. 그런데 이번에도 공무원들이 완장 찬 TF 대원 앞에 발가벗겨지는 것 같은 수모를 겪게 됐다. 과하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특검의 압박 조사에 정신적 충격을 받고 유명을 달리한 양평군 공무원의 영정에 여야(與野)가 고개를 숙인 게 불과 한 달여 전이다. 특검이 지난 5개월여간 수십 차례의 압수 수색과 통신 영장 집행에도 찾지 못한 ‘내란범’을 TF가 제대로 적발할 수 있을까. 정부가 그 TF의 이름을 ‘헌법 존중’ ‘정부 혁신’이란 말로 포장한 것도 논란이다. 관가에선 TF의 진짜 목적은 공무원을 정치적 성향에 따라 저편과 이편으로 갈라치고 길들이려는 것 아니냐는 말도 나돈다. TF가 들여다본 문자에 내란과 상관없지만 특정 정치인을 욕한 내용이 있다면 그 문자를 쓴 공무원은 어떻게 될까?

가뜩이나 ‘늘공’의 사기는 이미 바닥 수준이다. 얼마 전 전도유망한 외교관 2명이 사표를 썼고, 행정고시 재경직 수석이면 고민 없이 가던 기획재정부의 위상도 옛말이 됐다. 박봉이나 잦은 이사, 고된 업무 때문만은 아니다. 공무원에 대한 사회적 평판 하락은 이들의 고민을 더 버겁게 만들었다. 99% 절대다수의 공무원들은 지난 수십 년간 정권을 누가 잡든 주어진 일을 묵묵히 해 왔다. 하지만 정치 권력이 공직 사회를 흔드는 정도가 과해지고 있다.

정부는 21일 TF 총괄 자문위원 명단을 발표했다. 면면을 보면 편향된 정치적 언행으로 수사받은 이력이 있는 등 공정성·신뢰성이 의심스럽다. 일반 수사 기관이나 법원이라면 즉각 기피 대상이 됐을 이들의 손에 공무원 75만명의 운명이 달려 있다니 경악할 노릇이다. ‘내란 가담자’ 주홍글씨를 새겨 삶을 송두리째 파괴할 권한까지 부여한 셈이다. ‘헌법 존중’ 허울 아래 공무원을 대상으로 ‘내란 특별 조사 및 재판소’를 차린 게 아니고 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