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은 물건에 따라 세는 단위가 달라진다. 하지만 이제 이 문장은 과거형으로 써야 할지도 모르겠다. 음식은 ‘몇 그릇’이라 했고 꽃은 ‘몇 송이’, 나무는 ‘몇 그루’라고 했다. 책은 ‘몇 권’, 연필은 ‘몇 자루’, 과자는 ‘몇 봉지’, 안주는 ‘몇 접시’, 커피는 ‘몇 잔’, 달걀은 ‘몇 알’, 막대기는 ‘몇 자루’, 담배는 ‘몇 개비’, 맥주는 ‘몇 병’, 신발은 ‘몇 켤레’라고 했다. 과거에는 분명히 그랬다.

하지만 이런 단어들은 요즘 들어 급격히 ‘개(個)’라는 말로 통일되고 있다. “국밥 한 개 주세요” “아메리카노 세 개요”라는 말이 일상에서 표준화되는 현상을 보이는 것이다. 긍정적으로 생각하자면, 물건마다 달라지는 단위를 일컫는 말이 번거로워 ‘불필요한 혼란’을 없애고 효율화·합리화하려는 심리가 언어에 반영된 것일까.

다른 뜻에서 유래된 것이지만 ‘개’라는 말은 상당수의 부사(副詞)도 퇴화시키고 있다. 접두사 ‘개-’는 ‘개추워’ ‘개좋아’처럼 긍정과 부정의 의미를 포괄하며 사용된다. ‘매우’ ‘몹시’ ‘대단히’ 같은 말들을 밀어내고 있는 것이다. 이 현상을 ‘통신 언어에 나타난 역(逆)문법화 현상’이라고 본 학계의 논문이 이미 13년 전에 나왔는데 청소년의 과격한 언어 표현과 불안정한 심리 상태, 사회에 대한 불만이 나타난다고 했다. 이 분석이 맞는다면 불안정한 심리가 너무 오래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최근 한류의 영향으로 늘어나는 외국인 한국어 학습자 중에선 “이런 단어는 괜히 공부한 게 아닌가”라는 볼멘소리를 하는 경우가 있다. ‘아뿔싸’란 말을 책에서 배웠지만 실제로는 아무도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보지 못했고, 드라마 자막에서 많이 본 ‘맙소사’란 말도 마찬가지였다는 얘기다. ‘감사합니다’라는 말에 ‘천만에요’라고 대답하면 다들 웃거나 이상하게 쳐다본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물론 언어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당연히 변화하지만, 우리말 속 다채로운 어휘의 양 자체가 줄어드는 게 아닌가 싶을 때도 있다.

사라지는 언어 중에는 겸양(謙讓)의 표현도 있다. 며칠 전 대학가의 한 식당에서 식사를 하던 중 학생들이 들어왔다. 종업원이 “몇 분이세요?”라고 물으니 “세 분요”라고 대답했다. 처음엔 뭔가 장난스럽게 말하는 것인 줄 알았다. 그런데 잠시 후 다른 학생 한 명이 들어오더니 몇 분이냐는 물음에 “한 분요”라고 말하는 걸 듣고 놀랐다. 외국인 학생 같아 보이진 않았다. 상대가 ‘몇 분’이냐고 높여서 물어봤어도 대답하는 사람은 ‘몇 명’이라고 스스로를 낮추는 어법도 퇴화하고 있는 것이다.

전국 여러 곳에선 ‘사라지는 지역 언어를 지켜야 한다’며 사투리 교육 프로그램이나 경연 대회를 벌이고 있다. 그러나 정작 별다른 대책 없이 소멸의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은 ‘일상의 표준어’일지도 모른다. 맙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