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한 정치인 딸의 모바일 청첩장이 10월 국정감사를 앞두고 장안의 화제다. 동료 기자들이나 정부 부처 공무원, 대기업 직원들을 국회에서 만나면 그의 딸 청첩장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공통되게 하는 말은 “어이없다” “피감 기관인데 축의금 얼마 내야 할지 골치다” “국회의원이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로 정리된다.
그 청첩장을 보면, 축의금 낼 계좌번호는 물론이고 일반인 모바일 청첩장에서도 보기 힘든 ‘카드 결제 링크’가 눈에 잘 띄는 곳에 적혀 있었다. 계좌 잔고에 돈이 없더라도 신용카드로 축의금을 얼마든 지불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결혼식 날짜는 공교롭게도 여의도의 권력이 최고 절정에 달하는 국정감사 기간이다. 결혼식 장소도 국회 내 모처다. 이 정치인은 친여 유튜브 방송에 종종 자신의 후원 계좌가 적힌 팻말을 들고 출연했다. 그의 축의금 카드 결제 청첩장이 유독 구설에 오른 이유다. 그러다 당내에서도 “낯 뜨겁다”는 말이 나오자 청첩장에서 신용카드 결제 기능이 슬그머니 빠졌다.
정치인들은 “돈벌이용 아니냐”는 출판 기념회나 행사 등으로 욕을 먹지만, 그래도 자식 결혼만큼은 상식과 품위를 지키려 노력하고 세간의 눈치도 본다. 5선 박지원 의원은 2013년 첫째 딸은 물론 2015년 둘째 딸 혼사도 주위에 거의 알리지 않고 친인척 20여 명만 불렀다. 김부겸 전 국무총리는 딸 결혼식을 일반 결혼식장이 아닌 작은 공간을 빌려 가까운 지인들하고 작게 치렀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외아들의 결혼식을 100여 명만 불러 비공개로 했다.
여당은 ‘비상계엄 사태’의 반사이익으로 집권했다. 그럴수록 권력 행사에 있어서 자기 자제와 정치적 균형이 뒷받침돼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그 정반대로 가고 있다. 야당 때는 “법사위원장은 야당 몫”이라고 했지만 여당이 된 후에 다수당임을 강조하며 내놓지 않는다. ‘법사위원장은 야당 몫’이란 관행이 깨진 데 이어 이제는 야당이 자당 법사위 간사를 인선하려는데도 다수의 힘으로 막아섰다. 17대 국회 이후 국회의장은 제1당이, 법사위원장은 제2당이 맡는 견제 구조가 유지됐다. 아무리 치고받고 싸우더라도 지킬 건 지키는 게 관례이자 상식이었다. 그런데 이번 22대 국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의장과 법사위원장을 모두 독식했다. 견제와 균형이라는 의회 민주주의 원리를 무력화했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비상계엄과 탄핵으로 집권해 ‘민주주의의 회복’을 기치로 삼은, 그걸 바라는 수많은 국민의 기대로 탄생한 집권 여당의 민낯이다.
올해는 민주당 창당 70주년이다. 얼마 전 기념식도 열고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정신을 기렸다. 줄곧 야당 정치를 하다 극적으로 첫 정권 교체를 이룬 DJ는 “정당·의회 정치가 민주주의의 본질”이라고 했다. DJ가 ‘입법 독재’ 소리까지 듣는 지금의 민주당을 본다면 기함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