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구 선생님, 보고 계십니까?” “드디어 김구 선생님의 소원이 이뤄졌다!” 한류와 ‘K컬처’가 세계에서 큰 주목을 받는 지금, 적지 않은 사람들이 감격에 찬 어조로 여러 게시물과 댓글에서 하는 말이다.
1947년 자서전 ‘백범일지’의 본문 뒤에 실은 글 ‘나의 소원’에서 김구는 이렇게 썼다. “우리의 부력(富力)은 우리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强力)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갖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기 때문이다.”
김구가 이처럼 꿈꿨던 ‘문화 강국’이 이제야 실현됐다는 얘기다. 이런 말을 가만히 보면 종종 ‘대한민국의 현실 정치에서 군사력과 경제력, 분단과 독재에 집착했던 이승만과 박정희의 길은 잘못된 것이었다’는 함의가 보인다.
그런데 김구를 선양하는 반면 이승만과 박정희에 적대적인 세력은 뭔가 놓치는 것이 있다. 우선 김구와 이승만은 마지막 1~2년 동안 사실상 북한 공산주의자를 어떻게 대할 것인지의 문제에서 갈라졌을 뿐 평생 독립과 반공·반탁에서 같은 노선을 걸었던 민족주의 항일운동가였다는 점이다.
박정희는 어떤가? 남산 백범광장이 조성된 것은 1968년이었고, 그곳에 김구 동상이 건립된 것은 1969년이었다. 모두 박정희 시절이다. 김구의 아들 김신은 박정희 정부에서 주중(대만) 대사, 교통부 장관, 유정회 소속 국회의원을 지냈다. 알 수 없는 점은 김구 추종자 중에서 이 얘기를 하는 사람을 좀처럼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혹시 모르고 있는 것인가.
‘김구의 꿈’에서 더 중요한 점이 있다. 군사력과 외교력으로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키고, 경제력을 통해 문화 콘텐츠를 생산하고 배포할 능력이 없는 나라라면 과연 ‘문화 강국’이 될 수 있었을까?
상상력과 표현력을 보장하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는 문화 창작에서 필수적인 요소다. 만약 지금 북한의 영화와 드라마 중에서 대표적인 작품 10편을 넷플릭스에 띄운다면 세계인 중에 그걸 시청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호기심에서 클릭하더라도 10분 넘게 보기는 힘들 것이다.
경제력이란 면에선 또 어떤가. 우선 드라마 장르만 가지고 따진다면 지난해 기준으로 국내 제작 드라마는 약 100편이었고 제작비는 평균 30억원대였다. 그렇다면 ‘K드라마’에 한 해 투입되는 제작비는 최소 2억달러인 셈인데, 1953년 한국의 GDP(국내총생산)가 13억달러였다. 지난해 한국의 GDP 2556조원을 달러로 환산하면 약 1조8000억달러가 된다.
높은 문화의 힘을 염원했던 김구의 꿈은 그 자체로 훌륭한 구상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실현될 수 있도록 길을 놓아준 사람은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지키고 한강의 기적을 이뤘던 이승만과 박정희였다. 이 당연한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