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 출범 후 첫 국빈 해외 정상인 또 럼 베트남 공산당서기장의 방한 첫 일정은 서울 삼청동 주한 베트남 대사관에서 열린 호찌민 동상 제막식이었다. 그가 동상을 덮은 금성홍기(베트남 국기)를 잡아당기자 긴 턱수염을 한 호찌민의 흉상이 모습을 드러냈다. ‘호치민 주석’이라는 이름과 ‘독립과 자유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다’는 글귀가 한글 궁서체로 박혀 있었다.

또 럼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이 10일 서울 종로구 주한 베트남 대사관에서 열린 호찌민 흉상 제막식에서 연설하고 있다. /VNA

호찌민 흉상이나 초상화는 베트남을 여행하면 흔하고, 해외 정상들도 어김없이 그의 묘소를 찾아 헌화한다. 하지만 국제법상 외국이긴 해도 서울 한복판에 들어선 호찌민 흉상의 모습은 여러 생각을 갖게 한다. 호찌민이 누구인가. 베트남인들에겐 나라의 기틀과 통일의 기반을 다진 국부이자 영웅이다. 또한 단일 민족 간 체제 경쟁을 무력으로 끝낸 공산 지도자다.

지금은 과거사가 됐지만, 1964년부터 베트남에 파병한 국군에게 호찌민은 적군 최고 지휘관이었다. 2025년은 베트남전 종전·통일 반세기가 되는 해이자 공화국 건국 80주년 되는 해. 통일 후 도시 이름이 호찌민에게 헌정된 옛 남베트남 수도 사이공 함락일인 지난 4월 30일부터 공화국 수립일인 9월 2일까지 경축 행사가 줄줄이 열린다.

호찌민이 이끄는 공산 세력에 패망한 남베트남은 전쟁 초기엔 압도적인 미국의 군사 지원을 등에 업고 있었다. 그러나 전력상 우위는 베트콩을 앞세운 게릴라전, 남베트남 고정 간첩과 이적 세력이 주도한 반미 선전선동, 국제사회를 상대로 펼친 반전·평화 여론전에 점점 허물어졌다. 파리평화협정 체결로 미군이 빠져나간 뒤 평화라는 말이 무색하게 북베트남은 남베트남을 무력으로 병합했다. 국민을 등 돌리게 만든 남베트남 위정자들의 무능과 부패·분열은 망국으로 가는 지름길을 터줬다.

주한 베트남 대사관은 패망한 남베트남 대사 관저 자리에 들어섰다. 이곳에 우뚝 선 호찌민 흉상과 그에 얽힌 베트남 현대사가 새 정부 출범 후 들려오는 어리둥절한 뉴스들과 엮여 선뜩하게 다가왔다. 이재명 정부는 남북 평화를 강조하며 문재인 정부 때도 유지했던 대북 방송을 중단하고 전방 확성기를 걷어냈다. 주한 미군 감축 가능성이 높아진 상황에서 한미 연합 훈련도 예정보다 축소했다. 방한 이튿날 또 럼 서기장을 만난 이 대통령은 “베트남은 외국 군대와 싸워 이겨내고 통일을 이뤄낸 저력 있는 국가”라며 파월 국군 장병에겐 힐난으로 들릴 법한 말을 했다.

월북해 6·25전쟁 때 북한군으로 참전한 뒤 중국 공산당 작곡가로 활동한 정율성 동상 복원을 그의 고향인 광주광역시 남구에서 검토한다고 한다. 이런 국내 소식이 반세기 전 풍전등화였던 남베트남의 모습과 중첩된다면 과민 반응일까. 삼청동의 호찌민 동상에 예의를 갖춰 말하고 싶다. “생전에 발휘한 적화통일의 신공(神功)까지 이 한반도에 가져오지는 마시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