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세기 프랑스 시골에서 일어난 실화가 바탕인 영화 ‘마틴 기어의 귀향’(1982)은 진짜와 가짜의 모호한 경계, 정체성 문제를 다룬다. 아내와 아들을 남겨두고 집을 떠났던 마틴이 8년 만에 돌아온다. 무심했던 성격은 쾌활하게 바뀌었고 외모도 달라진 것 같다. 사람들은 ‘마틴이 맞나’ 반신반의하면서도, 동네 사람 이름부터 옛날 일까지 훤히 꿰고 있는 그를 점차 믿는다. 그러던 어느 날 “마틴은 전쟁에서 한쪽 다리를 잃었다”는 소문이 퍼진다. 의심이 자라나 소송이 시작된다. 마을 사람들은 법정에서 반으로 나뉘어 다툰다. 온 마을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맨 마지막 증인으로 나선 아내 베르트랑은 “남편이 맞다”고 증언한다. 그 순간, 목발을 짚은 ‘진짜 마틴’이 법정에 나타나 사람들은 속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진짜와 가짜가 다투다가 마지막에 진실이 밝혀지는 이런 유의 이야기는 여러 문화권에 걸쳐 존재한다. 항상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를 조심하라’는 교훈으로 끝난다. ‘가짜’란 늘 공동체의 존속을 위협하기 때문이다. 한데 이번 대통령 선거에 ‘진짜 대한민국’이란 슬로건이 등장했다. 마틴 기어의 재판이 중세 프랑스 마을을 둘로 갈랐듯, 대통령 선거를 앞둔 한국 사회를 둘로 가르고 있다.
심리학적으로는 진짜라고 주장하는 쪽이 ‘정체성 불안(anxiety of identity)’을 겪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이재명 후보 쪽에서 이 말을 들고 나왔는데, 그는 굽은 팔, 아버지 직업, 인권 변호사 등 개인적 서사를 구성하는 세부 사항에 허점이 많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대장동 개발 사업을 비롯해 위증 교사, 허위 사실 공표, 대북 송금 등 재판을 5건 받고 있기도 하다. 그는 “검찰의 조작 때문”이라고 하지만, ‘진짜 대한민국’을 강조한 무의식의 근저엔 개인적 취약성을 보상받으려는 심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후보의 지지자들 역시 이런 사정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마틴 기어의 아내도 처음부터 남편이 가짜라는 것을 알았다. 그는 재판이 끝난 후 찾아온 판사에게 말한다. “마틴은 나를 무시했지만, 아누드(가짜 마틴의 실제 이름)는 나를 존중했고 진짜 남편처럼 신뢰하게 됐어요.” 말도 없이 자기를 버리고 떠난 남편을 인정할 수 없었기에 자기 기준에 따라 새로운 선택을 한 것이다.
정치에는 기준이 있다. 분배와 평등, 성장과 안보 등 유권자의 가치관과 기준에 따라 지지 후보를 정하는 것이 선거의 본질이다. 다만, 지금 우리는 어느 한쪽이 자신의 취약성을 감추기 위해 ‘내가 진짜’라고 정체성을 앞세우면서 선거판이 거칠어졌다. 한쪽이 진짜라고 하면 다른 한쪽도 ‘내가 진짜’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 죽기 살기로 싸울 수밖에 없다. 이게 지난 세 차례 대선 TV 토론을 보며 강하게 든 느낌이다. 가짜로 판명 나면 공동체에서 쫓겨날 수밖에 없다. 영화 속 가짜 마틴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이제는 양쪽 모두에서 나오기 시작한 ‘내가 진짜’라는 말이 점점 위험하게 들리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