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술 마시고 운전하다 교통사고 내면 그야말로 패가망신한다. 보험 혜택을 거의 못 받는다. 기존에는 가해 운전자가 대인(對人) 1000만원, 대물(對物) 500만원까지만 물어내고 나머지는 보험사가 책임졌다. 하지만 어제(28일)부터 가해 운전자 부담액이 대인 1억5000만원, 대물 2000만원으로 10배 이상 늘어나게 됐다. 음주 사고만 아니라 약물·무면허·뺑소니 사고도 마찬가지다.
사고를 줄이고 운전자의 책임을 높이기 위해 필요한 제도 변화다. 그런데 뒤에서 손해보험사들이 몰래 웃고 있는 건 생각해봐야 할 문제다. 위법한 가해 운전자의 부담 액수가 늘어나는 만큼 손보사는 보험금 지급을 줄일 수 있게 된다. 운전자 일탈이 줄어 사고율이 낮아지는 것도 손보사들의 수익 제고에 도움이 된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요즘 손보사들이 표정 관리중”이라고 했다.
근년에 안전 규제는 잇따라 강화됐다. 이른바 ‘민식이법’ 영향으로 학교 앞에서 시속 30km 속도 제한을 적용받는다. 시내에서도 시속 60km 이상을 잡아내던 과속 카메라가 이제는 50km 이상이면 단속하고 있다. 지난 12일부터는 우회전 차량이 횡단보도 앞에서 일단 정지하도록 의무화됐다. 모두 사고율을 낮춰 손보사에는 유리한 조치들이다.
실제로 2019년 92.9%였던 국내 자동차보험 손해율(보험료 수입 대비 보험금 지출 비율)은 2021년 81.5%로 뚝 떨어졌다. 손보사 ‘빅5′(삼성화재·현대해상·DB손보·KB손보·메리츠화재)의 올해 상반기 자동차보험 손해율은 74~78%에 맴돈다. ‘빅5′ 중 상반기 실적을 맨 먼저 발표한 회사는 순이익이 작년 같은 기간의 3배에 이른다.
손보사들이 뒤에서 쾌재를 부르는 일은 더 있다. 법규 위반 운전자에 대한 처벌 수위가 강화되자 이를 덜어줄 수 있는 운전자보험 판매가 늘어나고 있다. 게다가 심각한 인플레이션에 따라 경제 주체들이 시름에 빠진 것과 달리 손보사들은 반사 이득을 얻고 있다. 휘발유·경유값이 폭등하는 바람에 차량 운행이 감소했고, 그 영향으로 자동차보험 손해율이 추가로 하락하고 있다. 올해 6월의 경우 일부 손보사 자동차보험 손해율은 60%대까지도 하락했다. 인플레이션마저 손보사 이익에 한몫 하고 있다는 의미다.
이쯤되면 자동차 보험료를 내려야 할 이유는 차고 넘친다. 하지만 손보사들은 모른 척 하고 있다. 보험료 인하를 유도해야 할 금융위원회나 금융감독원은 팔짱만 끼고 있다. 요즘처럼 물가 고통이 심할 때 자동차보험료가 내리면 서민들에게 단비가 될 수 있다. 다른 소비 여력을 키워 경기 회복에 도움이 될 것이다. 손보사들은 자진해서 보험료를 내려야 하고, 금융당국은 나몰라라 해서는 안된다. 자동차보험 가입자는 2000만명에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