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상의 1차 자료를 해석할 때는 반드시 문서의 전후 맥락과 문서 작성자의 의도를 면밀히 살펴야 한다. 가령 2차 세계대전 때 주변국을 침략한 나치 독일이 ‘민중을 압제자에게서 해방시키기 위해 진군했다’는 포고문을 발표했다면 이를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최근 김원웅 광복회장이 영상을 통해 한 고교 학생들에게 발언을 하고있다/유튜브

그런데 그런 사람이 광복회장을 맡고 있다. 김원웅 광복회장은 최근 고교생 대상 강연에서, 광복 직후 미군이 남한에서 발표한 ‘맥아더 포고령’과 소련군이 북한에서 발표한 ‘치스차코프 포고문’을 비교 설명했다. 미군 포고령에선 ‘점령’이란 말을, 소련군 포고문에선 ‘해방’이란 말을 강조했다. ‘미군은 점령군이고 소련군은 해방군이었다’고 받아들일 수 있는 설명이었다. 광복회는 한술 더 떠 “한국인을 개무시한 맥아더 포고령을 비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어이가 없을 정도로 단순한 비교다. 당시 38선 남북을 각각 점령한 미군과 소련군의 역할은 ‘점령군’이라는 점에서 기본적으로 같았다. 그러나 이것은 카이로 회담과 포츠담 선언에 따라 일본군을 무장 해제하고 한반도를 해방하기 위한 일시 점령이었다.

미군과 소련군의 차이는, 딱딱한 용어로 행정 문서를 작성한 미군과 달리 소련군은 정치 장교까지 두고 능숙한 선전 선동을 발휘했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구체적인 내용 대신 ‘조선 사람들이여! 기억하라! 행복은 당신 수중에 있다’거나 ‘해방된 조선 인민 만세!’ 같은 사탕발림 문구가 버젓이 들어갈 수 있었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이후의 미·소 군정(軍政) 통치가 과연 어떻게 전개됐느냐는 것이다. 정치 활동의 자유라는 면에서 분명한 차이가 났다. 미 군정이 공산당을 포함한 모든 정당을 합법화한 반면, 소 군정은 공산당을 제외한 모든 정당을 불허했다. 소련이야말로 점령군이었다. 분단 획책도 소련이 먼저였다. 스탈린은 1945년 9월 지령서를 통해 남북 분단을 지시했고, 1946년 2월 북조선 임시인민위원회라는 사실상의 ‘북한 단독 정부’를 세웠다. 한 학자는 “소련군 포고문은 요즘 같으면 공정위에서 허위·과장 광고로 제재를 받았을 것”이라며 혀를 찬다.

미·소 포고문 일부 문장의 단순 비교는 과거 ‘좌편향 교과서’로 비판받았던 금성출판사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가 실었다가 물의를 빚었던 것이다. 2004년 학계의 강한 문제 제기 이후 교육부의 권고를 통해 2008년 수정됐고, 이후 교과서들은 두 포고문을 보여주더라도 미군 포고령에서 ‘적당한 시기에 조선을 해방 독립시키려는 연합국의 결정을 명심하고 있다’는 문장을 제시하거나 당시 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 추가 설명을 넣었다. 그런데 대한민국 광복회장이 돌연 어린 학생들 앞에서 시계를 17년 전으로 되돌렸다. 1945년 한 소련군 정치 장교가 만들어 냈을 선전 선동이 한반도에선 76년 동안 먹혀들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