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균 논설주간
한미 연합·합동 의무지원훈련

트럼프 정부가 새로 내놓은 국가 안보 전략(NSS)과 국가 방위 전략(NDS)은 중국이 대만을 공격하는 양안 사태를 가장 심각한 안보 위협으로 지목했다. 전 세계 부와 인구가 집중된 이 지역에 대한 미국의 접근권이 중국에 의해 거부되면 국가적 위기라는 인식이다.

지난달 주한 미군의 서해공중훈련도 이런 미국의 전략적 판단 속에 실시됐을 것이다. 그리고 그 훈련이 사전에 통보됐는지 여부를 놓고 한·미 간에 갈등이 불거졌다. 중국을 자극할 수 있는 이 훈련에 대해 우리 정부는 “사전에 몰랐고 그래서 국방장관이 주한미군 사령관으로부터 사과를 받았다”고 했다. 반면 주한 미군은 “한국 군 관계자들이 다 알고 있었던 사안인데 국방장관에게 보고되지 않았다면 유감”이라고 했다. 말하는 측과 듣는 측의 ‘아이 엠 쏘리’ 의미가 달랐다. 주한 미군은 “우리는 대비 태세를 갖추기 위한 것에 대해 사과하지 않는다”는 입장문까지 내놨다. 미군은 훈련하지 않으면 군사 역량이 감축되며 실전에 투입될 병사들의 생존을 위협한다고 본다. 동맹과의 파트너십도 “강인하고 실전적인 훈련을 통해 구축한 신뢰와 힘에 바탕을 둔다”고 내부 문서에 적혀 있다.

이번 사태는 한국군 내부에서 정보가 제대로 공유되느냐는 문제 의식도 불러일으켰다. 계엄 사태 문책으로 군 지휘부 수십 명이 경질되는 사태 속에서 정권이 못마땅해 하는 주한미군의 서해 공중 훈련 소식을 아무도 상부에 보고하지 않으려 했기 때문이다.

미국이 2027년을 고비로 보는 양안 사태는 앞으로도 한미 관계를 불편하게 만들 것이다. 미국은 사활적 이해가 걸린 이 문제에서 한국도 당연히 한 편이 돼줄 것으로 기대한다. 한국전 때 함께 피 흘린 사이 아니냐는 것이다. 반면 이재명 정부와 그 지지층은 양안 사태는 남의 문제라고 발을 뺀다. 70년도 지난 한국전쟁 신세 때문에 우리 젊은이들을 위험에 빠뜨릴 수 없다고 한다.

주한미군의 희생은 1953년 7월 정전협정으로 일단락된 게 아니다. 1955년 8월 첫 전사자를 시작으로 103명이 숨졌고 부상자는 1000명이 넘는다. 1976년 8월 18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미루나무 가지치기 작업을 하던 미 육군 장교 두 명이 북의 도끼 만행으로 숨진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1969년 4월 15일, 미 해군 EC 121 정찰기에 탑승해 임무를 수행 중이던 미군 31명이 북한 미그기의 공격을 받아 전원 사망한 것이 단일 사건 최대 희생이다. 미국 요청으로 파병된 우리 군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면 나라가 뒤집어졌을 것이다.

1968년 1월 23일 푸에블로호가 동해 공해상에서 북에 나포되는 과정에서 미 해군 일병이 전사했고 나머지 승무원 80여 명은 그해 말까지 억류 상태에서 신체적, 정치적 고문을 당했다. 하루 뒤인 1968년 1월 24일 박정희 대통령 암살을 위해 침투한 북한 무장 공비 도주를 차단하는 작전 과정에서 미 사병 2명이 숨졌다.

미 국방부는 비무장지대, 임진강 지역을 ‘적의 포화 지역’으로 선포했으며 이 지역 근무 미군에게 전쟁 지역 수당을 지급했다. 한국 근무가 목숨을 걸어야 할 정도로 위험했다는 뜻이다. 주한 미군 전사자들 속에 10대 후반부터 20대 사병들이 즐비했다. 그럼에도 “미국이 한국에서 무엇을 얻을 게 있다고 젊은이들을 희생시키느냐”는 원망을 들었던 기억은 없다.

동맹은 함께 목숨 걸고 싸우기로 약속한 사이다. 미국의 또 다른 동맹인 일본의 다카이치 총리는 “미국이 공격받을 때 달려가지 않고 도망친다면 그것은 동맹이라고 할 수 없다”고 했다. 한국 대통령은 야당 대표 시절 “양안 문제에 왜 우리가 개입하나. 대만해협이 어떻게 되든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냐”고 했다. 동맹의 무게를 재는 미국의 저울은 어느 쪽으로 기울 것인가. 진실의 순간이 다가왔을 때 미국은 어느 쪽 동맹을 구하기 위해 달려갈 것 같은가.

동맹의 건강을 탐색하는 미국 출장 일정 중에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이 시작됐다. 미군 부대 영내에서 잡혀 있던 인터뷰 일정이 변경된 배경을 뒤늦게 짐작하게 됐다. 한미연합사 우리 측 전직 관계자는 “미국은 전쟁을 결심했고, 전쟁 중에는 신경이 극도로 곤두선다”면서 “우리 진보 정권 관계자들이 부정적인 반응을 내비칠까 걱정된다”고 했다.

귀국 비행장을 빠져 나와 국내 언론 사이트에 접속했다. ‘이란 초등학교 오폭’에 대한 비판과 “4만명의 자국민을 죽인 정권이 핵무기를 가지면 평화적으로 사용할 것 같으냐”며 이란 공격을 지지하는 미스 이란 출신의 목소리가 맞서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