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지난 5일 국회에서 당내 사퇴론과 재신임 투표론 관련 입장 발표 기자간담회를 마친 뒤 회의실을 빠져나가고 있다. 장 대표는 이날 "나에 대한 사퇴 혹은 재신임 투표 요구가 있다면 전 당원 투표를 하겠다"며 "재신임을 받지 못한다면 당대표직과 국회의원직을 내려놓겠다"고 했다. /연합뉴스

국민의힘 이성권 의원과 김근식 당협위원장이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 여부’를 놓고 전당원 투표를 제안했다. 당내 개혁 성향 의원 모임 간사인 이 의원은 장동혁 대표가 “윤과 절연을 요구하는 세력과 절연하겠다”고 한 입장 발표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며 “장 대표가 윤 어게인의 몸통”이라고 했다. 이 의원은 이런 중대한 문제에 대해 당 대표가 당 노선을 혼자서 정할 수 없다면서 “의원총회 비공개 표결이나 전당원 투표를 해보자”고 했다.

장 대표의 ‘윤석열 무죄 추정’과 ‘윤과 절연 거부’ 선언은 많은 국민에게 충격을 주었다. 장 대표의 성향이 그렇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너무 노골적이고 저돌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당에 대한 민심에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이런 문제를 당 대표 한 사람이 마음대로 정한다는 것은 옳지 않다. 이 의원이 말한 ‘의원총회 비공개 표결’은 국힘 의원들의 몸 사리기 습성을 볼 때 성사될 가능성이 높지 않다. 결국 남는 것은 전당원 투표다.

지금 국힘은 혼돈과 혼란, 무기력 상태에 있다. 비전 제시는 고사하고 최소한의 대여 견제도 못 하는 지경이다. 근본 원인은 계엄과 윤 문제를 둘러싼 내분 때문이고 이는 봉합될 성질의 문제가 아니다. 6월 지방선거 전이든 후든 사달이 나게 돼 있다. 국힘의 수도권 지방선거 후보들은 장 대표를 배제하고 선거운동을 하면 되지 않을까 궁리할 수도 있지만 어려울 것이다. 유권자들이 출마자들을 보며 그 뒤에 있는 윤 어게인 당 대표를 떠올리지 않겠나. 선거 상황에 따라 수도권 후보자들이 ‘도저히 안 되겠다’고 판단하면 선거 중에도 당 내분이 격화될 것이다. 그럴 바엔 전당원 투표를 통해 윤에서 벗어날 것인지 아니면 윤 어게인 당으로 갈 것인지 결론을 내고 이에 따라 각자 정치적 향방을 정하는 것이 양쪽을 위해서 나을 수 있다.

이 의원과 김 위원장은 전당원 투표를 하면 윤과 절연하자는 쪽이 이길 것으로 생각하는 듯한데 실제 투표 결과는 다르게 나올 가능성도 상당히 있다고 본다. 지금 국힘 당원 구성은 일반의 생각 이상으로 바뀌어 있기 때문이다.

2021년 이준석 대표 당선 때 30만명이던 책임 당원이 윤석열 대선 후보 당선과 1년여 뒤 친윤 김기현 대표 당선을 거치며 50여만명이 늘어나 83만명이 됐다. 이 시기에 들어온 당원들 중엔 친윤 성향이 상대적으로 다수라고 봐야 한다. 이 당원 숫자는 계엄 파동으로 75만명 수준으로 줄었다가 장동혁 대표가 당선된 뒤 6개월 만에 다시 25만명이나 늘어나 100만명 수준이 됐다. 장 대표와 일부 최고위원들이 윤 어게인 성향을 노골적으로 드러내자 이를 본 사람들이 대거 당원으로 들어왔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이들 당원들 중엔 윤 어게인파, 전광훈파, 부정선거론파, 정치 유튜버 추종자 등 여러 성향의 사람들이 다양하게 포함돼 있을 것이라고 본다.

이런 당원 구성이 지금 국힘 문제의 본질이다. 장동혁 대표가 윤과 절연을 정면으로 거부할 수 있는 것도 이 당원 구성을 믿기 때문이다. 장 대표는 당 대표 선거를 다시 한다고 해도 자신이나 자신과 같은 성향의 인물이 또 이길 수 있다고 판단할 것이다. 지금 장 대표는 자신의 지지표인 이들 당원에게 영합하고 있는 측면도 있다. 국힘 당협위원장 24명이 장 대표 비판 성명을 내자 그 3배인 71명의 당협위원장이 장 대표 옹호 성명을 낸 것이 지금의 국힘이다. 그래서 장 대표가 전당원 투표를 수용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약간의 모험으로 상대를 무력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당원 투표 결과 개혁 성향 의원들 바람대로 ‘윤과 절연해야 한다’는 쪽이 승리하면 장 대표는 명분을 잃고 국힘은 당 정상화, 상식화의 시동을 걸 수 있을 것이다. 반대로 ‘윤 어게인’ 쪽이 이기면 국힘이 갈라지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으로 본다. 국힘은 ‘윤석열 당’ ‘부정선거론자 당’이 되는데 이런 당에서 정치를 할 수 없는 사람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윤석열 당’에서 나가려는 사람들에겐 박근혜 탄핵 후 ‘바른정당’의 실패가 트라우마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엉거주춤 그냥 가면 국힘은 2028년 국회의원 총선에서 유권자들에 의해 최종 심판을 받게 될 수 있다.

전당원 투표 결과 ‘윤과 절연’과 ‘윤 어게인’이 비슷하게 나오면 국힘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면서 당 내홍이 지리하게 이어질 것이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국힘 당원들의 뜻이 어떤지를 확인하는 것이 안개 속에서 의원들끼리 징계하며 매일 싸우는 것보다는 낫다.

계엄을 일으켜 보수 정치를 망친 윤 전 대통령을 다시 떠받들거나 근거 없는 부정선거 음모론을 믿는 사람들은 국민 전체로 볼 때는 소수다. 그런데 이 소수가 보수 정당을 장악하고 있다면 정치적으로 중요한 문제다. 국힘이 실제 그런 상태에 있는지 전당원 투표로 확인하는 것은 국민 전체의 정치적 판단과 보수 정치 재건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