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균 논설주간
문제의 공천자 김경, 강선우 총선 출마 때 함께 선거운동 2024년 4·10 총선을 앞둔 2월 28일 서울 강서구 까치산역에서 서울 강서갑에 출마한 강선우(오른쪽)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김경 서울시의원과 함께 선거운동을 하는 모습. 최근 2022년 4월 민주당 김병기 전 원내대표와 강선우 의원의 대화 녹음이 공개되며 김 시의원이 강 의원에게 1억원을 제공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강선우 의원 블로그

“정치인은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사람.” 90년대 말 정치권을 처음 취재할 무렵 들은 자조 섞인 농담이다. 자칫 교도소 안쪽으로 떨어질지 모르는 아슬아슬한 곡예를 한다는 것이다. 선거에 드는 엄청난 자금을 마련하려면 검은돈에 손댈 수밖에 없는 숙명을 호소하는 얘기였다. 그런 시대는 2000년대 들어 막을 내렸다. 선거법 개정과 선거 풍토 변화로 비용 자체가 크게 줄었고, 15% 이상만 득표하면 나라에서 모든 비용을 보전해 준다. 또 선거를 치르는 해는 후원금을 평소 두 배인 3억원까지 걷을 수 있다.

그래서 선거 때 부정한 돈을 주고받는 관행이 사라진 줄 알았다. 그런데 2022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민주당 강선우 의원은 서울시 시의원 공천 대가로 1억원을 받았다고 한다. 민주당 김병기 의원 배우자는 2020년 동작구 구의원 배우자가 500만원을 건네자 “설 선물로는 너무 많고 공천 대가로는 너무 적다”며 퇴짜를 놨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그래서 다시 1000만원을 준비해서 전했다는 것이다. 민주당 내부에선 시의원 공천은 1억원, 구의원 공천은 1000만원이라는 시세가 형성된 모양이다.

민주당 정치인들은 교도소 담장 위를 걷던 30년 전 선배들의 모험을 감수하기로 한 것일까. 그럴 리가 있겠는가. 민주당은 다 믿는 구석이 있었다. 민주당 김경 서울시 시의원은 문제의 1억원을 강 의원에 전달했다는 보도가 나온 지 8일 만에 미국 라스베이거스 CES 현장에서 손가락 V자를 그리며 사진을 촬영했다. 만천하에 공개된 범죄 혐의자에 대해 경찰이 출국금지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김병기 의원은 무려 13개 혐의에 대한 의혹이 불거지기 시작한 지 두 달이 넘었는데 경찰이 압수수색에 나선 것은 지난 14일이었다. 민주당이 김 의원을 제명하자 그제서야 물증 채집에 착수했다. 통일교 금품 로비 의혹을 받는 민주당 전재수 의원에 대한 경찰 압수수색은 의원회관에 도착한 지 2시간 20분 후에야 집행이 시작됐다. 민주당 출신 국회의장에게 사전 고지하기 위해서였다. 그 사이 의원실 내부에선 문서 파쇄기 돌아가는 소리가 요란했다고 한다.

영화에서 자주 보던 장면이 떠오른다. 죽을 고비를 몇 차례씩 넘겨가며 경찰서에 도착한 주인공이 가쁜 숨을 몰아쉬며 악당을 고발한다. 주인공을 안심시킨 경찰이 고개를 돌리는 순간 입가에 묘한 미소가 번진다. 범죄와 한통속인 경찰 캐릭터다. 요즘 들어선 현실에서도 자주 목격하는 대한민국 경찰의 모습이기도 하다.

몇 년 전까지는 상상하기 힘들었던 광경들이다. 온 국민이 목격한 정치인 비리 의혹이 불거지면 검찰이 즉각 출국금지 조치를 취하고, 압수수색에 착수하는 것이 상식이었다. 그러나 이제 검찰은 정치인 수사를 못한다. 수사권을 박탈당했기 때문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검찰수사를 받던 중 극단적인 선택을 하면서 민주당이 검찰개혁에 시동을 걸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윤석열 총장 시절 검찰은 아직 서슬퍼런 문재인 정권과 전면전을 벌이기까지 했다. 대통령이 임명한 조국 법무장관을 수사하더니, 대통령 친구를 당선시키기 위해 청와대가 조직적으로 움직였다는 ‘울산시장 선거 개입 의혹’까지 들쑤셨다.

이후 민주당 정권과 민주당이 장악한 국회는 본격적으로 검찰 무력화에 착수했다. 2020년 말 공수처 신설과 검경 수사권 조정으로 1단계 시동을 걸더니, 문 정권 임기 마지막 순간 검찰의 수사 대상을 대폭 축소하는 검수완박을 강행 처리했다. 그리고 이제 검찰에게 오로지 기소와 공소 유지만 남겨 놓는 마지막 절차를 진행 중이다. 대통령과 법무부 장관은 경찰이 뒷거래로 범죄를 덮으려 할 때 검찰이 보완 수사를 할 수 있는 권한을 놔두자고 하는데 민주당 강경파들은 그것마저 안 된다고 한다.

검찰 횡포를 막는 정의로운 개혁으로 포장됐지만, 실제 결과는 권력자들의 사법 안보로 나타나고 있다. 민주당 정치인들은 나쁜 짓을 해도 수사받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만들어졌다. 검찰로부터 수사권을 넘겨받은 경찰은 집권당 인사들을 감옥에 보낼 의지도 담력도 없다는 사실이 확인되고 있다. 민주당이 검찰 개혁이라는 거창한 이름을 내걸고 5년 넘게 해온 일은 자신들이 교도소 담장 안쪽으로 떨어질 위험을 제거하는 과정이었다. 그 안전장치를 믿기 때문일까, 민주당 사람들의 탈법 행각은 점점 과감해지고 있다. “교도소 갈 걱정만 없다면, 특권과 갑질을 충분히 누리고 싶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