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균 논설주간
백해룡 경정과 임은정 동부지검장./뉴스1·뉴시스

정우성과 조인성이 악덕 검사로 출연하는 영화 ‘더 킹’(2017년)을 통해 임은정 검사를 알게 됐다. 감찰 담당 여검사가 동료들의 비행을 파헤치는 장면이 나온다. 실존 인물을 상정해서 상찬한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임 검사가 그 대상이라고 했다. 임 검사는 검찰의 ‘내부 고발자’로서 좌파 진영의 칭송을 받았다. 문재인 정권 들어 검찰 개혁에 힘을 보태면서 논란의 중심에 섰다.

2019년 조국 사태 때 임 검사는 “연한 살이 찢어지는 고통이 검찰 개혁이라는 영롱한 진주로 거듭날 것”이라고 했고, 2020년 공수처 출범이 임박하자 “검찰이 (공수처의) 황금어장이 될 것”이라며 “공수처 그물이 내려질 때 ‘이 물고기’, ‘저 물고기’를 지목하겠다”고 했다.

백해룡 경정 이름을 처음 접한 것은 지난 9월 국회 법사위 관봉권 띠지 청문회였다. 건진법사 자택을 압수수색하면서 발견된 관봉권 띠지가 남부지청에서 분실된 배경을 따지는 자리였다. 백 경정은 민주당 의원들이 원하는 답변을 자판기처럼 쏟아냈다. “윤석열 대통령 부부가 관봉권 출처라는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검찰이 고의로 띠지를 없앤 것”이라는 취지였다. “띠지 분실 사건의 진범은 △△△ 수사관”이라고 단정적으로 지목하는가 하면, 검사 몇몇을 꼽으며 “이런 사람들이 검사입니까, 청문회장을 나설 때 모두 체포해야 한다”고 했다. 경찰 중간 간부가 공개 석상에서 검찰 조직을 짓이기는 모습이 낯설었다. 검찰 개혁을 바라는 여권 지지층은 환호했을 것이다.

청문회에서 백 경정은 “관봉권 수사 경험이 많다”면서 “한국은행에서 내보낼 때 일련번호를 기재하기 때문에 어느 은행으로 갔는지를 알 수 있다”고 했다. 관봉권에 대해 모른다는 실토였다. 관봉권은 수량만 확인할 뿐 일련번호를 기록하지 않는다는 게 한은의 공식 설명이다. 추적이 안 된다는 뜻이다. 더구나 문제가 된 관봉권은 시중에서 유통되는 구권을 회수해서 다시 공급하는 ‘사용권’이었다. 일련번호가 제각각이라서 물리적으로 기록할 방법이 없다.

이런 사람이 왜 청문회 참고인으로 나왔지 궁금했다. 2023년 초 발생한 인천세관 마약 반입 사건이 “윤석열 정부의 조직적인 범죄”라고 주장하면서 민주당 의원들의 신뢰를 얻은 게 배경이었다. 백 경정은 띠지 청문회 마무리 발언으로 “내란의 운영 자금 준비를 위해 마약 독점 사업을 했다고 확신한다”면서 “윤석열·김건희 공동 정권의 민낯”이라고 했다.

청문회 직후 좌파 유튜브에는 “백해룡 경정, 강렬한 법사위 등장” “백 경정의 소름 돋는 반전 추리” “백 경정의 한 방 정리” 같은 동영상이 쏟아졌다. 조회 수 41만회를 기록한 “백해룡 경정의 폭풍 증언”에는 백 경정에 대한 개딸들의 찬사가 댓글로 달렸다. “백해룡은 영웅이다” “대한민국의 소중한 분, 신변 보호해 주세요” “백해룡을 경찰청장으로…” “응원합니다. 감사합니다.”

띠지 청문회 직후 이재명 대통령은 임은정 서울동부지검장이 지휘하던 인천세관 마약 의혹 사건 합동수사단에 백해룡 경정을 합류시키라는 지시를 내렸다. 검찰의 임은정, 경찰의 백해룡, 개딸들이 열광하는 투톱 지휘부가 결성됐다. 계엄 정국에서 강성 발언을 이어가며 개딸들의 찬사를 받았던 민주당 김병주 의원은 “역시 이재명 대통령이다. 3년 묵은 체증이 쑥 내려간다. 임은정 검사장과 백해룡 경정을 믿는다”고 했다.

그로부터 두 달 뒤 임은정 수사단장은 “인천 세관이 마약 밀반입을 도왔다는 백 경정 주장은 근거가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백 경정이 말레이시아 마약 운반책들에게 속았다는 것이다. 운반책들이 세관 협조자로 지목한 A씨는 당일 휴가였고, “제복을 입고 있었다”는 B씨, C씨는 사복 근무조로 확인됐다. 마약을 통과시켰다는 4번, 5번 검색대는 사건 당시 작동하지 않았다. 운반책들끼리 “세관원이 도와줬다고 말을 맞추자”고 공모하는 장면이 동영상에 포착되기도 했다.

백 경정은 “임 단장이 수사의 기초도 모른다”고 반발했다. 상당수 민주당 지지층도 백 경정 편에 섰다. 좌파 진영 유튜버들은 “임은정도 결국 검사였다” “임은정 왜 배반했나”라고 비난한다. “윤석열, 김건희 부부가 계엄 자금 마련을 위해 마약을 밀반입했다”는 시나리오가 무산되는 게 싫은 거다. 개딸 내전 상황이다. 임 단장은 “백 경정이 사실과 추측을 구별하지 못한다”고 했는데 그런 사람을 수사에 투입한 대통령 탓이다. 불을 냈으면 꺼야 하는데 못 본 척한다. 막강 화력 개딸 진영의 심기를 건드릴까 국정 혼란을 방치한다. 이재명 대통령 머릿속 우선순위가 무엇인지 짐작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