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트럼프 미 대통령 앞에서 ‘북한 중국 잠수함 추적을 위해 원자력 추진 잠수함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순간 전율 같은 것을 느꼈다. 외교 실무진 차원에서 어느 정도 조율이 끝난 상황이었겠지만 한국의 핵 문제에 미국이 알레르기 반응을 보여온 전례를 감안하면 거의 비현실적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트럼프가 ‘이해한다’는 반응을 보인 것도 충격적이었고 다음 날엔 ‘승인한다’고 했다. ‘꿈인가 생시인가’라는 게 이런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불가능해 보였던 수십 년 숙원이 마치 실마리가 한꺼번에 잘려나가듯이 풀렸다. 아직 갈 길은 많이 남아있지만 어쨌든 대문이 열렸다. 경주의 그날 이전과 이후의 한국 해군, 나아가 우리 군사력은 다른 차원으로 넘어가고 있다고 해도 좋다고 본다.
이 놀라운 일을 해낸 대통령이 민주당 출신이라는 사실에 불편해하시는 분도 많은 것 같다. 민주당은 ‘군사력이 아니라 남북 대화로 평화를 지킨다’는 정당으로 알려져 있다. 문재인 대통령 당시 국방일보는 실제 그런 제목의 기사를 쓰기도 했다. 이런 위험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적지 않은 정당 출신인 대통령이 한국의 원자력 잠수함 시대를 열었다. 인지부조화를 일으킬 정도로 모순으로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사실 이 대통령만이 아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다 죽어가던 김정일에게 막대한 현금과 물자를 지원해 살려주었고 김정일은 핵폭탄 제조를 계속할 수 있었다. 김 대통령은 서해에서 북한 공격으로 우리 장병이 사망한 다음 날 월드컵 결승전 참관을 위해 일본으로 갔다. 안보 측면에서 이해하기 힘든 일들이다. 그런데 김 대통령 시기에 국산 전투기 KF-21 개발 결정이 내려진 것 또한 사실이다. 김 대통령이 여기에 얼마나 개입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대통령이 반대했으면 도저히 진행될 수 없는 것이 전투기 개발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북핵은 한국 위협용이 아닌 북한 자위용이라고 한 사람이다. 노 정부 사람들은 줄곧 ‘북은 핵을 개발하고 있지 않다’고 믿고 싶어 했다. 갖은 궤변도 했다. 그런데 노 대통령은 동시에 원자력 잠수함 개발도 승인했다. 원잠은 김영삼 대통령 때부터 은밀히 논의돼 왔지만 노 대통령은 2003년 6월 2일 국방 장관의 원잠 본격 추진 보고를 받고 “해보자”는 어려운 결정을 내렸다. 이른바 ‘362 계획’이다. 영국 프랑스 원잠 기술을 도입하자는 이 계획은 한동안 강력하게 진행됐다. 결국 좌절됐지만 그때 시작된 연구는 꾸준히 이어져 지금 상당 수준에 올라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친북 성향이 도가 넘은 사람으로 보였다. 김정은 눈치를 너무 봐 무슨 약점이 잡혔나 의심이 들 정도였다. 그런데 문 대통령은 미국으로부터 한미 미사일 지침 폐기를 얻어내 우리 미사일 개발의 족쇄를 풀었다. 한국 군사력에 획기적 이정표다. 우리 SL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첫 발사가 이뤄진 것도 문 대통령 때였다. 문 대통령 때 KF-21 첫 시제기 출고도 이뤄졌다. 군 관계자에게 ‘문 대통령이 정말 좋아했느냐’고 물었다. 그는 “나도 의외인데 정말 좋아하는 것 같았다”고 했다.
우리가 유럽에 떨어지지 않는 방위산업 기술 국가, 세계 최고 수준의 정밀 탄도미사일 국가가 된 것은 해방 후 지금까지 역대 정부가 없는 살림, 빠듯한 재정에도 막대한 군비를 쓰며 군사력을 강화해 온 덕분이다. 이재명 대통령까지 포함하면 진보 정부 집권이 20년이다. 만약 민주당 대통령들이 군사력 강화에 제동을 걸었다면 지금의 우리 군사력과 막강한 미사일 전력, 원잠은 애초에 불가능했을 것이다.
우리 방위산업과 군사력 건설의 기초를 만든 사람은 물론 박정희 대통령이다. 그 후의 대통령들도 이를 이어받았고 거기엔 민주당 대통령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민주당 정권 때 국방비 지출 액수와 실전 배치된 무기들이 그 증거다. 역대 민주당 대통령 시절 국방비가 줄어든 적이 거의 없다.
민주당 대통령들은 북한 김씨 왕조와의 대화에 집착해 왔다. 때로는 김씨 왕조보다 국내 라이벌 정당을 더 싫어하는 듯하기도 했다. 여기에 동의할 수 없는 국민이 최소 절반은 될 것이다. 그렇다고 민주당 대통령들이 우리 군사력 건설을 외면한 것은 아니었다.
세상을 두부 자르듯 잘라서 이편, 저편을 가르면 생각이 편하다. 그러나 그것은 사실(事實)이 아니다. 세상은 ‘10대0’ 이 아니라 ‘6대4’가 모인 것이다. 많은 경우는 ‘5대5’다. 지금 정치판은 만사를 ‘10대0’으로 보는 극단적 생각들이 판을 치고 있다. 정치 유튜브엔 ‘10대0’도 아니고 ‘100대0’을 선동하는 무리들이 넘쳐 난다.
한국 첫 원잠의 진수식까지 대략 10년은 걸릴 것이다. 그때 대통령은 다른 사람이겠지만 첫 원잠 진수식의 주인공은 ‘이재명 전 대통령’이 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