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소속 추미애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이 13일 국회 법사위 국정감사장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의 항의를 받고 있다. 추 위원장은 이날 출석한 조희대 대법원장 상대로 민주당 의원들이 질의하도록 했다. 대법원장은 통상 인사말만 하고 이석(離席)하는 게 관례지만, 추 위원장은 조 대법원장을 이석시키지 않았다. /남강호 기자

올해 일본 과학자가 노벨생리의학상과 화학상을 받았다. 한국에서는 ‘일본보다 1인당 GDP를 앞섰다’ ‘일본은 IT에서 뒤떨어졌다’ ‘일본 사회는 변화 없이 답답해 발전하지 못한다’는 ‘자신감’이 많이 생겨나고 있지만 안으로 들어가 보면 일본의 저력은 우리가 범접하기 어려울 정도로 깊고도 넓다.

필자 개인적으로는 너무 주관적이고 논란이 많은 노벨평화상과 문학상은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일본 노벨상 수상 분야는 26명 중 23명이 물리, 화학, 생리의학 등 과학이다. 우리 이공계의 인재 육성과 연구 환경, 풍토 등 실상을 보면 말 그대로 까마득한 수준이다. 상 받으려고 공부하고 연구하는 것은 아니지만 노벨상 시즌만 되면 답답하고 절망적인 기분을 느끼곤 한다.

그런데 일본 학자가 노벨의학상을 받았다는 뉴스를 듣고 지금은 고인이 되신 언론계 선배가 자주 하던 농담이 갑자기 떠올랐다. 의사과학자 양성 길이 사실상 막혀 있는 나라에서 노벨의학상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할 것이란 생각을 하다 문득 기억난 농담이었다. 그분은 “한국에선 과학자가 아니라 정치인들이 노벨의학상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했다. 무슨 말이냐고 했더니 “노벨의학상은 질병 치료에 도움이 되는 연구에 주는 것인데, 치료 정도가 아니라 죽은 사람을 살리면 당연히 노벨상을 줘야 하지 않겠느냐”고 했다.

그 선배는 “김영삼 대통령이 말년 국정을 잘못해 두 번의 대선 낙선으로 정치적 사망선고를 받은 김대중과 김종필을 살려냈고, 김대중 대통령은 완전히 망해 주민을 떼로 굶겨 죽이는 김정일을 살려내지 않았느냐”고 했다. 생각해보면 그 이후로도 박근혜 대통령은 다 죽은 문재인을 살려냈고, 다시 문재인 대통령과 조국 추미애는 윤석열에게 정치 생명을 주었고, 윤 대통령은 이재명과 조국 추미애를 되살렸고, 죽었다 살아난 추미애는 지금 나경원을 살리고 있다. 한 명 한 명 다 노벨상을 줄 수 없으니 ‘한국정치’ 명의로 단체상을 수여해야 할 정도다.

이 도돌이표 정치의 관성으로 볼 때 이재명 대통령과 정청래 대표가 또 어떤 ‘기적의 의술’을 행해 누구나 죽은 것으로 보는 윤석열과 김건희를 살려낼지도 모를 일이다. 한국 정치에서 벌어지는 기적의 의술은 그 핵심이 ‘오만’이다. 권력에 만취해 마구 휘두르다가 결국 제 눈을 찌르고 그 덕에 가장 증오하는 상대가 관 뚜껑을 열고 살아나온다.

이재명 정부가 출범한 지 5개월이 돼간다. 이 대통령은 민주당에선 드물게 운동권 출신이 아니다. 시장과 도지사 시절 대장동 사건 등 논란이 많지만 한편에서는 ‘일은 잘한다’는 평가도 받았다. 그래서 “실용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을 때 기대를 가진 사람이 적지 않았다. 아직 초반이라 그 기대를 접을 때는 아니지만 실용, 온건과는 거리가 먼 일들이 연이어지고 있다. 뒤늦게 운동권이 된 듯한 언행도 나오고 있다.

기업들이 입을 모아 재검토를 호소한 노란봉투법과 상법 개정을 강행했다. 민주당이 공영방송을 장악할 수 있는 법을 강행 처리한 것도 모자라 정부의 권한 밖인 민간 방송 사장 교체를 법에 명시하는 폭거도 저질렀다. 이 대통령은 언론계 대표들 앞에서 방송법 처리를 서두르지 않겠다고 공언하고선 실제로는 서둘렀다. 이 대통령과 야당 대표가 합의한 정신을 민주당 대표가 무시하더니 여야 원내대표가 합의한 내용을 곧바로 파기해버렸다. 그렇게 정부조직을 민주당 1당의 독단으로 바꿨다. 이제는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모를 특검도 그런 식으로 연장했다.

이진숙 한 사람을 축출하기 위해 정부조직인 방통위를 없앴다. 그걸로 분이 안 풀렸는지 이진숙을 갑자기 체포하기도 했다. 국민의힘이 국회 상임위 국민의힘 간사를 정하는 것도 못 하게 막았다. 자신들이 야당일 때는 야당 몫이라며 차지한 국회 법사위원장을 여당이 되자 여당 몫이라며 또 차지했다.

정부 수립부터 지금까지 존재해온 검찰을 개선 노력도 없이 없애버렸다. 대법원을 장악할 수 있는 대법관 대폭 증원과 이 대통령 재판과 관련된 것이라는 4심제도 제대로 된 논의도 없이 밀어붙이고 있다. 이 와중에 김현지라는 사람의 국회 출석을 막으려 대통령실과 온 여권이 다 나선 것 같다. 정청래 대표의 야당 해산 위협은 시도 때도 없다. 지금 국힘이 워낙 이상해 새 정부에 대한 민심 이반이 심각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지만 임계점 부근에 와 있는 것으로 느낀다.

이 대통령이 이념 정치를 그만두고 실용으로 돌아와 노동, 규제, 교육, 공공 개혁으로 우리 경제와 사회를 도약할 수 있게 만들어주기 바란다. 과유불급, 역지사지, 새옹지마의 지혜만 되새기면 가능한 일이다. 그러지 않고 지금처럼 무리한 폭주를 계속하면 그것이 ‘기적의 의술’이 돼 정치적으로 죽은 사람들을 또 되살리게 된다. 그때는 민주당이 폭주로 만든 법과 제도는 신기루처럼 사라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