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쟁(抗爭)’은 ‘맞서 싸움’이란 뜻이지만 그냥 맞서 싸운다는 의미가 아니다. ‘부마 민주 항쟁’ ‘6월 항쟁’이라고 할 때 ‘항쟁’은 비장한 정서를 물씬 풍긴다. 이 말은 ‘국가 권력의 부당한 폭력에 맞서 폭력을 쓰며 싸우는 일’을 뜻한다. ‘항쟁’의 주체에는 정당성이 부여된다. 따라서 ‘항쟁’이라고 말할 때는 ‘누가 누구에게 항거해서 정당한 폭력을 행사했는가’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일부 지자체에서 1948년 10월 19일에 일어난 여순 사건을 ‘여순 항쟁’으로 바꿔 쓰고 있다는 뉴스가 나왔다. ‘사건’을 그저 높여 부르는 게 ‘항쟁’인가? 아니다. ‘항쟁’이란 말을 쓰는 순간 사건의 주체에겐 ‘부당한 거대 권력에 맞서 정당한 폭력을 쓴 의인(義人)’이라는 긍정적 의미가 살아나는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 19일 페이스북에 “국방경비대 제14연대 장병 2000여 명이 제주 4·3 사건 진압 명령을 거부했다”며 “국민을 보호해야 할 군인이 국민에게 총부리를 겨눌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썼다. 명령을 거부했을 뿐이었나? 평화적 시위라도 벌인 것인가?
그러지 않았다. 14연대 내 남로당 세력은 10월 19일 무기고와 탄약고를 장악했다. 이어 “제국주의 앞잡이인 장교를 죽이자”고 선동했고, 장교 21명을 무참히 살해했다. 인근 좌익 세력과 동조해 관공서를 습격하고 1000여 명을 학살했다. 이 희생자들은 ‘보호해야 할 국민’이 아니었나? 어쩐지 사상이 다르면 동족 취급을 하지 않았던 것처럼 보인다.
제주 4·3 사건과 여수·순천 10·19 사건은 진압 과정에서 무고한 민간인의 희생이 많았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는 분명 대한민국 초기 역사의 오점이다. 그러나 그것이 애초에 무장 폭동을 일으킨 공산주의자들의 행적을 정당화해 줄 수 있는가? 전혀 별개 문제지만 구렁이 담 넘어가듯 그것조차 미화되고 있다.
1948년 4월 3일과 10월 19일에 폭동을 일으킨 남로당 세력은 무엇을 하려고 했는가? 4·3 폭동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위한 5·10 총선거를 방해하려는 책동이었다. 4·3 진압을 거부하고 여수·순천 일대를 장악한 남로당 세력은 신생 대한민국 정부 전복(顚覆)을 기도했다. 태극기를 흔들며 더 나은 나라를 만들자고 시위를 벌인, 이후의 ‘민주 항쟁’과는 성격부터 달랐다.
이제 근본적 질문을 할 때가 됐다. 과거 ‘여순 반란’이라고 부른 ‘여순 사건’을 이제 ‘여순 항쟁’으로 바꾼다면 무엇이 달라지는 것인가. ‘부당하게 수립된 대한민국 정부를 뒤집어엎기 위해 정당하게 벌인 투쟁’이라는 의미를 받아들인다면 우리가 발 딛고 사는 이 대한민국 체제를 ‘잘못된 나라’ ‘없애야 할 나라’라고 부정하는 일이 된다. 자유민주주의를 향유하는 대한민국 국민이 말이다. 헛웃음이 나올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