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의원들은 딸 또래 검찰 수사관을 앉혀 놓고 융단폭격을 가했다. 지난 5일 관봉권 띠지 분실 청문회가 열린 국회 법사위에서 “그때 일이 기억 안 난다”는 수사관에게 의원들은 “누가 띠지를 없애라고 지시했느냐” “혼자 죄를 뒤집어쓰고 구속되고 싶으냐”고 윽박질렀다.
서울 남부지검은 작년 12월 건진법사 전성배씨 자택을 압수 수색하면서 현금 뭉치 1억6500만원(5만원권 3300장)을 발견했는데 그중 5000만원은 한국은행이 화폐 수량과 상태를 보증하는 관봉권이었다. 500만원 뭉치 10다발이었는데 5만원권 100장씩을 묶은 띠지 10개가 없어진 것을 뒤늦게 발견했다. 압수물 담당 수사관이 띠지를 풀어 지폐를 헤아려 본 뒤 띠지를 보관하지 않았다는 것이 남부지검 설명이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이 돈이 윤 대통령 부부로부터 흘러들어 온 것을 은폐하기 위해 검찰이 고의로 띠지를 폐기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띠지 분실 사건을 상설특검을 통해 수사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법무부, 민주당, 대통령실이 번갈아가며 띠지 분실을 문제 삼고 분노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들은 “관봉권 띠지에 중요한 정보가 담겨 있나 보다”라고 짐작했을 것이다. 정작 관봉권을 담당하는 한국은행 사람들은 고개를 갸우뚱한다. ‘100장 묶음’이라는 의미밖에 없는 띠지가 국가적 관심사가 된 것이 어리둥절하다는 것이다.
관봉권은 한국은행이 상태와 수량을 보증해서 시중에 공급하는 현금 다발이다. 새로 인쇄한 신권은 ‘제조권’, 시중에서 회수해서 다시 공급하는 경우는 ‘사용권’으로 분류한다. 5만원권 100장씩 묶은 10다발을 비닐에 싸서 창고에 보관했다가 은행이 요청하면 전달한다. 그때마다 수량이 맞는지 헤아릴 수 없으므로 한은 검수관이 “500만원 뭉치가 맞다. 틀리면 내가 책임진다”고 자기 이름과 날짜를 미리 적어 놓은 게 띠지다. 관봉권 뭉치는 같은 것으로 취급하며 구별하지 않는다. 어느 은행에 언제, 얼마를 전달했다는 기록은 남지만 어느 뭉치가 갔는지는 모른다. 제조권이나 사용권이나 마찬가지다.
특수부 검찰 출신 변호사도 “한은 관봉권으로 자금 추적을 한다는 것은 처음 듣는 얘기”라고 했다. “관봉권 흐름이 추적되려면 시중 은행이 한은으로부터 돈을 받고, 고객에게 돈을 내줄 때마다 관봉권 바코드 기록을 저장해야 한다”고 했다. “그건 은행이 고객의 자금 흐름을 사찰하는 것인데 그럴 은행이 있겠느냐”고 했다.
그는 “수사에 도움이 될 수 있는 건 시중은행이 현금을 묶은 띠지”라고 했다. 뇌물을 준 사람이 “몇 월 며칠 어느 은행에서 현금을 찾아 전달했다”고 증언했는데, 뇌물을 받은 사람 집에서 같은 날짜, 같은 은행 직원 이름이 적힌 띠지가 발견된다면 증거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자금 출처를 숨기려고 띠지를 없앴다”는 정권 주장이 말이 안 되는 보다 확실한 이유는 따로 있다. 남부지검 수사관은 5만원권 100장씩 묶는 띠지는 분실했지만, 500만원 열 묶음을 담았던 비닐봉지의 스티커는 사진 촬영으로 남겨 두었다. 스티커엔 “5만원권, 사용권, 5000만원, 발권국(담당 부서), 담당자 이름, 책임자 이름, 기기 번호, 2022년 5월 13일(포장 날짜)” 같은 정보가 적혀 있다. 분실된 띠지에는 똑같은 정보 중 담당 부서, 담당자 이름, 기기 번호, 날짜만 인쇄된다는 게 한은 설명이다. 스티커에만 있고 띠지엔 없는 정보는 있지만, 반대로 띠지에 있는 정보 전체는 스티커에 담겨 있다. 스티커가 남아 있는 한 띠지를 잃어 버려서 상실되는 정보는 아무것도 없다. 검찰이 관봉권 출처를 은폐하려 했다면 스티커도 함께 폐기했어야 한다.
압수품을 처리했을 당시 수사관은 29세, 경력 9개월 차였다. 압수물을 원형대로 보존하지 않은 미숙을 지적받을 수는 있다. 그러나 “감옥에 가고 싶으냐”는 엄포를 들어야 할 정도의 범죄를 저질렀다고 볼 수는 없다.
분실된 관봉권 띠지가 자금 흐름을 밝힐 수 없는 빈껍데기라는 것을 파악하는 데 두세 차례 통화로 충분했다. 민주당이 청문회에 한은 담당자를 불러 증언을 들었으면 10분 안에 확인될 내용이었다. 민주당은 그 진실이 공개되는 것을 원치 않았던 것 같다. 남부지검 검사는 “분실된 띠지엔 촬영된 스티커보다 더 적은 정보가 담겨 있다”는 ‘천기’를 누설하다 호통을 듣고 멈춰야 했다. 민주당이 원했던 것은 진실이 아니라 “검찰은 해체돼야 마땅한 사악하고 한심한 조직”이라고 굿판을 벌일 멍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