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9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429회 국회(정기회) 제2차 본회의에서 교섭단체 대표 연설을 하고 있다. /뉴스1

“한날 한시에 싹 모아다가 묻어버리면 세상에는 2번 찍은 사람 없어질 것” “단호하게 한 번에 쓸어버려야 안 되겠냐고 한다”는 말은 최근까지 민주당 고위 당직을 지낸 유명한 전 의원이 한 것이다. 지난 대선에서 2번 찍은 국민은 41%가 넘는데 다 묻는다는 말을 하다니 통도 큰 사람이다. 그런데 그의 이 말을 들으며 무언가 겹치는 장면이 떠올랐다.

작년 12월 3일 윤석열 당시 대통령이 붉게 상기된 얼굴로 갑자기 TV에 나타나 “일거에 척결하겠다”며 계엄을 선포한 그 모습이다. ‘한꺼번에 모아서 다 묻어버리고 쓸어버리는 것’과 ‘일거에 척결’하는 것은 똑같은 것이다. 민주당 중에서도 민주당스럽다고 잘 알려진 그 전 의원의 속마음이 실은 윤 전 대통령과 같다는 것은 놀랍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지금 민주당에선 그런 말이 나오고도 남는다는 생각도 든다.

민주당에서 거의 일방적 지지를 받고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야당을 없애겠다는 위협을 계속하고 있다. ‘2찍 일거에 척결’과 본질적으로 궤를 같이하는 발상이라고 생각한다. 정 대표의 논리는 ‘국민의힘 지도부가 계엄 해제 표결을 고의적으로 방해해 내란에 동조했고, 지금도 내란 세력이 국힘에 들어와 있다’는 것이다.

윤 전 대통령의 계엄 선포가 헌법과 법률상 ‘내란’ 요건에 해당하는지는 아직 판결이 나지 않았다. 대법원 확정판결까지 나오려면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이다. 아직 내란으로 단정할 수 없는 단계라는 뜻이다. 그날 밤 국힘 의원 18명이 계엄 해제 표결에 참여해 모두 찬성했다. 그 사람들 거의 모두가 지금 국힘에 그대로 있다. 또 당시 민주당 의원만으로도 넉넉하게 계엄 해제 안건을 통과시킬 수 있었다. 국힘 지도부의 의도와 상관없이 계엄 해제를 방해하는 것 자체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했다는 뜻이다. 현재 윤 전 대통령 지지자 일부가 국힘에 입당했다고 해도 그것은 개인의 정치적 자유일 뿐이다. 나중에 국민이 선거로 심판할 문제다.

그런데도 정청래 대표는 국가 기간 시설 타격을 모의한 통진당에 내려졌던 ‘위헌 정당 해산’을 국힘에 적용하겠다고 한다. 민주당은 통진당 후신에 국회로 들어올 길을 열어주었다. 그렇다고 국힘이 민주당에 위헌 정당 해산 요구를 해선 안 되듯이, 민주당도 함부로 국민 41%의 지지를 받은 정당을 ‘일거에 척결’하겠다고 해서는 안 된다. 민주당이 국힘을 해산시키겠다고 목에 핏줄을 세우는 것을 보면, 윤 전 대통령이 파업 의사들을 ‘처단하겠다’고 한 일이 떠오른다.

‘일거에 척결’파가 늘 내세우는 것이 ‘민주’와 ‘자유’다. 민주와 자유라는 최고 가치를 위해서는 한꺼번에 묻어버리고 쓸어버릴 수 있다는 자기 정당화다. 윤 전 대통령 계엄 선포문도 “일거에 척결해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겠다”고 했고, 민주당 그 전 의원도 “한 번에 쓸어버리면 대한민국 민주주의는 완전히 성공하고 한 단계 도약한다”고 했다.

민주당은 이렇게 ‘민주’를 위한다는데 만약 지금 외국인이 한국 민주당을 보면 중국이나 러시아의 독재 정당과 구별하기 힘들 것이다. 다수 야당일 때는 상대 당은 물론 국민 여론까지 무시하고 입법 폭주, 방탄 폭주, 탄핵 폭주, 예산 폭주를 했고, 정권을 잡은 다음엔 ‘전광석화, 폭풍 개혁’을 한다면서 입법·행정부만이 아니라 사법부까지 다 뒤집고 있다. 전광석화와 폭풍 개혁이란 말 자체가 민주주의와 결코 양립할 수 없는 반민주적 태도다. 민주당이 밀어붙이는 ‘내란 특별재판부’도 민주주의 법치 제도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뛰어넘어 버리겠다는 것이다.

민주당 내에서 ‘일거에 척결’과 ‘전광석화 폭풍 개혁’과 같은 과격한 심성을 가진 세력이 이른바 ‘개딸’이다. 그들의 압도적 지지로 정 대표가 당선됐다. 민주당 일각의 얘기에 따르면 대통령실이 내년부터 정 대표와 어느 정도 거리 두기를 할 것이라고 하는데, 민주당 열성 지지층이 이재명 대통령과 정 대표 중 누구를 택할지는 아직 알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우리 정당 당원 중에 ‘상대를 한 번에 쓸어버리고 싶어 안달 난’ 사람들이 많고, 지금 민주당에선 정 대표가 그들의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겸허한 태도’ 없이는 결코 이뤄질 수 없다. ‘겸허’와 정반대에 있었던 사람이 윤 전 대통령이다. 그때 윤 전 대통령만큼 오만한 게 지금의 민주당이다. 오만하고 과격한 것이 닮았는데 끝이 다를지는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