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경기도 고양 킨텍스에서 열린 전국당원대회에서 당대표에 당선된 정청래 신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당기를 흔들고 있다./연합뉴스

정청래 의원이 압도적 차이로 민주당 대표에 당선된 것을 보면서 모난 돌이 정 맞지 않고 도리어 몰표를 맞는 한국 정치의 속성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 우리 선거에서는 원만한 사람, 이편 저편을 잘 아우를 것 같은 사람, 상대 처지도 이해하는 사람, 보통의 가정·성장·교육 배경을 가진 사람은 큰 환영을 받지 못한다. 원만하지 않고 모난 사람, 무언가 억울해서 분노에 찬 사람, 상대를 무시하고 그들을 말살해 줄 것 같은 사람, 찢어지게 가난했거나 평범하지 않은 드라마 같은 인생사를 가진 사람에게 대중은 열광했다.

민주당을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정치인을 꼽으라면 정 대표가 1, 2위일 것으로 본다. 이는 민주당 지지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사람 1, 2위가 정 대표라는 말과 같다. 그렇다고는 해도 정 대표가 이렇게 크게 이길 줄은 몰랐다. ‘모난 돌이 몰표 맞는’ 한국적 정치 현상이 점점 심해지는 추세라는 뜻이다.

정 대표는 모난 사람이 많은 한국 정치권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모난 사람이다. 정 대표가 한 일 중에서 가장 유명하면서 그를 잘 보여주는 사건은 1989년 서울 미 대사 관저 점거일 것이다. 그는 다른 586 정치인과 달리 운동권 지도부가 아닌 행동대 출신이다. 정 대표는 1989년 10월 새벽에 다른 대학생들과 함께 담을 넘어 들어가 미 대사 관저를 점거했다. 이 과정에서 놀랍게도 사제 폭탄을 여러 발 던졌다. 당시 흔하던 화염병과는 차원이 달랐다. 관저 안에서 주한 미 대사 부부를 찾아 다니다 경찰이 들어오자 폭탄을 또 던졌고 거실에 시너를 뿌리고 불을 붙이려 했다.

1989년이면 6·29 선언으로 대통령 직선제가 시행된 이후다. 아직 미흡한 점이 있다고 해도 민주화의 큰 고비는 넘은 상황이었는데도 이런 극단적이고 과격한 행동을 했다. 미국이나 유럽이었다면 즉각 대테러 특수부대가 투입됐을 것이다. 정 대표는 이 일로 아직도 미국 입국이 자유롭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미 대사 관저에 던진 폭탄은 ‘훈장’이 돼 정 대표에게 국회의원의 길을 열어줬다. 하지만 운동권 정당인 민주당에서도 그는 아웃사이더에 가까웠다. 당 안팎으로 좌충우돌했고 ‘막말 정치인’으로 통했다. 정 대표가 국회에서 하는 언행을 보면 ‘절제’라는 것이 없다. 민주당에서 성공하기 위한 처신이라고만 할 수 없는 것은 국회 밖에서도 그랬기 때문이다. 정치인들은 개인이나 가족의 불미스러운 일이 밝혀지면 언행에 조심하고는 하는데 정 대표는 그러지도 않았다. 많은 민주당 의원도 뒤에서 혀를 찼지만 그는 민주당 지지자들 사이에선 점수를 쌓아가고 있었다.

정 대표는 이제 민주당 내에서 거의 독립적인 지위에 올랐다. 이재명 대통령과 더 가까웠던 박찬대 의원을 압도적으로 꺾었다. 싫든 좋든 우리 정치에서 움직일 수 없는 상수가 됐다는 뜻이다. 여기서 그에게 한 가지 고언을 하는 것은 우리 정치를 위해서이고 정 대표를 위해서다.

40년 가까이 정치를 지켜본 뒤 필자 머리에 남은 것은 새옹지마(塞翁之馬)와 과유불급(過猶不及)이란 두 사자성어다. 지금 행운이 언제 불행으로 바뀔지 모르고, 지나치면 모자라느니만 못하다는 것은 인간사의 진리이지만 정치에서 특히 그렇다고 수없이 느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근한 예이지만, 수많은 사례의 하나일 뿐이다.

정 대표는 인생 자체가 새옹지마다. 미 대사 관저에서 던진 폭탄이 제대로 터졌으면 정 대표는 지금 이 자리에 없을 것이다. 폭탄을 잘못 만들고 방화를 제대로 못 한 ‘불운’으로 약한 처벌을 받았다. 그 덕에 출소 후 학원을 차려 돈도 벌고 2004년 노무현 탄핵 역풍으로 국회의원 배지도 거저 줍다시피 했다.

이 행운은 불행의 씨앗이 됐다. 쉽게 의원이 돼 과격하고 절제 없는 언행을 거듭하다 2008년에 민주당 우세 지역인데도 낙선의 쓴맛을 봤다. 2012년에 다시 당선됐지만 거친 언행으로 2016년엔 당에서 아예 공천 컷오프를 당했다. 그런데 대신 공천받은 의원의 투기 논란으로 2020년 의원으로 복귀할 수 있었다. 행운이 불행으로 뒤바뀌고 그게 다시 행운으로 반전됐다. 정치는 새옹지마다. 이 진리를 두렵게 여기는 사람은 큰 실수를 하지 않는다.

정 대표가 하는 언행엔 바른말이거나 생각해 볼 만한 내용도 적지 않다. 젊은 대학생이 미국에 항의할 수도 있다. 그러나 폭탄 투척은 아니다. 그는 항상 지나쳐서 문제가 된다. 정 대표는 없애라 하고, 밟으라 하고, 무시하고, 정면 공격하는 인생을 살아왔다. 그런 지나치고 모난 언행으로 지금 당대표 자리까지 오른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 지나침은 결국 대가를 가져온다. 시간의 문제일 뿐이다.

정 대표는 야당과 악수도 하지 않겠다고 했고, 야당을 해산시켜야 한다고 했다. 지금 야당은 문제가 심각해 정 대표의 말을 무조건 막말이라고만 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너무나 지나치다. 정 대표는 논란이 큰 입법도 전부 밀어붙인다고 공언하는데 역시 너무 지나치다. 지나친 것보다는 모자라는 것이 낫다. 권력이 큰 정권, 정당, 정치인일수록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