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주한 미군 주임무를 대북(對北)에서 대중(對中)으로 바꾼다는 것은 최근 이슈화되고 있지만 미국은 이를 오래전에 결정하고 실행에 옮기는 중이다. 한국이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수십 년간 진행된 군사기술적, 지정학적 변화에 적응하는 것이다.
지금 군사 기술은 20~30년 전에 비해 천지개벽 수준으로 발전했다. 장거리 초음속 정밀 타격이 일반화됐다. 이스라엘이 1500km 떨어진 이란을 정밀 타격하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드론이 서로 수백km 떨어진 곳을 거의 매일 타격하고 있다. 이제 괌에서 평양을 20여 분 안에 타격하는 극초음속 미사일도 곧 전력화된다. 과거처럼 수송선으로 며칠 걸릴 필요 없이 대형 수송기로 즉각 병력 투입이 가능하다. 그 병력이 사용할 기갑과 화력 장비들은 한국 내에 비축돼 있다. 미군이 한국에 직접 주둔해야 할 군사 기술적 필요성은 거의 없어졌고 앞으로 더 줄어들 것이다.
한국군의 외형적 능력도 과거와 비교할 수 없게 증대됐다. 자주포와 다연장로켓, 탱크 등 포병 및 기갑 화력은 규모와 성능이 세계 정상급이다. 유럽에 수출할 정도다. 탄도미사일도 마찬가지다. 북 미사일을 막을 요격 미사일은 미국·이스라엘 다음 수준이다. 공군과 해군은 북한을 압도한다.
이렇게 여건이 바뀌었는데 미국 입장에서 북한의 미사일 사정거리 안에 있는 한국 기지에 자신들 육군 병력을 둘 이유가 없다. 그들에겐 상식의 문제다. 이미 주한 미군 전투 병력은 경량화된 스트라이커 여단 하나와 대(對)화력전을 수행하는 화력 여단 하나뿐이다. 스트라이커 여단은 한국과 미국을 왔다 갔다 하는데 반(半)주둔, 반철수 상태다. 미군 대화력전 여단은 한국군 대화력전 능력의 10분의 1도 안 된다. 장비도 아주 낡았다. 이미 주한 미 지상군은 실질적인 것이 아니라 상징적 의미에 불과하다.
주한 미 해군은 처음부터 없었고, 공군만 있는데 그나마 4개 비행대대에서 3개 대대로 줄었고 군산 기지를 오산 기지 하나로 통폐합했다. 주한 미 공군 전투기도 미 공군 내에서 가장 낙후된 것들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북한 공군은 무시해도 될 수준이고 북한 지상 타격은 한국 공군이 해도 충분하기 때문이다. 이미 한국 공군의 규모나 화력은 주한 미 공군의 5~10배에 달한다. 더구나 미 공군은 일본 기지에서 금방 한국으로 날아올 수 있다. 북한 미사일의 집중 공격을 받을 한국 내 비행장에 미국이 최첨단 전투기를 둘 이유가 없는 것이다.
무엇보다 미국은 “이제 북한은 한국이 충분히 감당할 수 있으니 우리는 중국에 집중하겠다”는 것이다. 미국 입장에서 중국을 상대하려면 주한미군이 아니라 주일미군을 중심으로 하는 게 유리하다. 우선 일본은 미국과 함께 중국과 싸울 가능성이 높지만 한국은 미지수다. 한국은 중국에서 너무 가까워 전략적으로 필요하기도 하지만, 한국 내 미군 기지가 즉각 중국의 공격을 받게 된다는 문제도 있다. 일본 기지는 아직은 상대적으로 안전하다.
미국은 주한 미군을 대중(對中) 전선의 주력보다는 GP(최전선 감시초소)로 보는 것 같다. GP엔 감시 병력 정도만 두고 핵심 주력은 두지 않는다. 미국은 오산 기지의 노후 전투기를 대함 미사일 발사용으로 개조해 중국 북해 함대와 동해 함대가 대만으로 내려가는 것을 견제하는 구상을 할 수 있다. 이 경우 중국은 먼저 오산 기지를 공격할 것이기 때문에 이마저도 한국 정부가 반대할 가능성이 있다. 그 경우 미국은 중국의 대만 침공이 임박했다고 판단하면 주한 미 공군 전투기들을 거의 전부 일본으로 옮길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주한 미군은 육군에 이어 공군까지 사실상 철수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중국이 대만을 실제 침공할 확률은 아주 낮지만 미국은 대비하고 있고 그 1차 위기는 시진핑이 밝힌 2027년이다. 실전력으로서 주한 미군은 퇴색되고 한미 동맹은 조약으로 남는 시기가 그리 멀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일본 해상자위대, 항공자위대는 미국의 지원을 받아 비약적으로 발전하게 된다. 일본은 F-35 스텔스기를 라이선스로 자체 생산하는데 그 1호기가 이미 출고됐다. 앞으로 150대 가까이 쏟아진다. 우리는 39대다. 일본은 혼슈 북부에서 발사해 대만 근해의 중국 함정을 공격하는 미사일을 개발하고 있다. 거의 2000km다. 미국이 중국 견제의 총본부를 일본에 두게 되면 주일 미군 사령관이 대장으로 승격되고 주한 미군 사령관이 중장으로 격하된다.
장거리 정밀 신속 타격 무기의 획기적 발전, 한국군 능력의 증대, 미국 대중국 전략에 한국의 동참 불확실 등 3가지 요인이 동시에 작용하면서 미국 입장에서 ‘과거의 주한 미군’은 거의 효용성을 잃었다. 이런 근본적 요인에 변화가 없는 한 주한 미군의 사실상 철수는 트럼프 시대가 끝나도 계속 진행될 것이다.
우리가 미국 편에서 중국과 싸울 생각이 없으면 ‘우리가 알던 그 주한 미군’에 대한 미련을 버려야 한다. 핵을 제외하고 북의 어떠한 위협도 우리 힘으로 제압할 수 있어야 한다. 주한 미군 없으면 큰일 날 것처럼 하는 국민 인식도 바뀌어야 한다. 6·25 때 한국이 아니다. 무엇보다 국민이 상무 정신을 갖고 18개월 복무 기간부터 24개월로 늘려야 한다. 훈련도 형식이 아니라 진짜로 해야 한다. 그런데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면 한숨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