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후보 시절인 지난 5월 '코스피 5000 시대'라고 적힌 피켓을 들어 보이고 있다. /뉴스1

승차 공유 회사인 ‘우버’가 로보(무인) 택시 2만대를 주문해 미국 도시에 배차를 시작한다고 최근 발표했다. 전기차는 미국 기업 ‘루시드’, 자율 주행 기술은 스타트업 ‘누로’에 각각 수억 달러씩을 주고 사서 쓴다고 한다. 우버를 포함해 모두 창업한 지 20년이 안 된 회사들이다.

한국은 택시 기사들의 반발에 동조한 국회가 2020년 이른바 ‘타다 금지법’을 제정해 우버 같은 승차 공유를 원천적으로 틀어막았다. 승차 공유가 큰 부가가치를 만들어낼 자율 주행 무인차로 발전해나갈 것이라고 당시 전문가들이 예고한 상태였지만, 정치인들이 눈앞의 ‘한 표’에 굴복했다. 현재 우버의 시가총액은 코스피 2위인 SK하이닉스의 1.3배 수준이다. 유튜브에선 웨이모(구글), 바이두 등의 로보 택시가 미국과 중국의 거리를 오가는 동영상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딴 세상 풍경 같다.

지난달 취임한 이재명 대통령은 가시적 단기 성과로 주식시장 상승을 언급한다. 실제로 코스피는 3000에 이어 3200 선을 빠르게 넘었고 조만간 최고점도 경신할 전망이다. 이사회 역할 재정립, 일반 주주의 권익 보호 등을 통해 그동안 한국 주식시장의 발목을 잡아온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겠다는 정부 방침에 투자자들이 호응한 결과다.

이 대통령은 ‘코스피 5000’을 목표로 내걸고 있다. 달성되길 바란다. 그런데 그다음은 무엇이어야 할까. 최근 만난 한 투자 전문가는 말했다. “주가는 결국 혁신하는 기업이 끌어올립니다. 이익 단체를 설득 못 해 우버 하나 못 하게 막는 나라, 돈 잘 버는 기업은 단죄의 대상으로 보는 한국이 5000 그다음을 기대할 수 있을까요?”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후보자였던 지난 17일 서울 여의도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그는 법인세율 인상을 시사했다. /뉴스1

이 대통령은 반기업 정서를 버리고 기업 친화적인 정책을 펴겠다고 한다. 하지만 잇달아 나오는 정책들은 반례(反例)를 계속 보여주고 있다. 지금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산업인 AI에 정부는 100조원을 투자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한편으론 AI 등 테크 업계가 산업의 특성상 유연하게 적용해달라고 거듭 요청해온 주 52시간 근무제는 근무 시간을 주 4.5일제, 혹은 주 48시간 근무제로 더 줄이게 거꾸로 가고 있다. 입법에 이미 속도가 붙었다. 여당은 파업으로 인한 손해에 회사가 책임을 묻지 못하게 한 이른바 ‘노란봉투법’도 다음 달 통과시키겠다고 하고 있다.

법인세를 올리겠다는 신임 기획재정부 장관의 계획은 이재명 정권이 홍보해온 주주 권익 보호와 충돌한다. 주식 투자의 성공 여부는 주가가 얼마나 오르나, 배당을 얼마나 많이 받나 둘로 결정된다. 배당은 번 돈에서 비용 쓰고 이자·세금을 내고 남은 돈으로 한다. 법인세가 오르면 줄어들 수밖에 없다. 배당 적게 주는 기업은 주가도 내려가기 마련이다.

정부가 모를 리가 없을 텐데, 법인세 인상을 왜 들고나왔을까. 이 대통령의 과거 글에서 힌트를 찾을 수 있다. 2022년 5월 나온 책에 복지 예산 충당 방안을 언급하며 쓴 대목이다. “대기업에 현재 부과하고 있는 법인세 20%를 30%로 인상하면 연평균 15조원의 재원을 마련할 수 있다. 참고로 미국은 35%의 법인세를 부과하고 있다.” 기업에서 돈을 거둬서 ‘기본 사회’에 쓰겠다는 단순 논리였다. 얼핏 들으면 그런가 싶을 수 있지만 법인세 인상은 기업의 투자·고용·배당 여력을 줄이는 등 부작용이 커서 대부분 나라가 쉽게 손대지 않는 정책이다.(참고로 미국의 연방 법인세율은 2018년 21%로 내려간 후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최근 증시 ‘밸류업’의 모범 사례로 종종 대만이 거론된다. 대만인인 왕수봉 아주대 경영학과 교수는 “대만 증시의 숨은 동력은 기업이 마음껏 사업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고 기업과 ‘원팀’이 되어 함께 뛰고자 하는 정부의 노력”이라고 했다. 한국은 어떤가. ‘코스피 5000’이란 목표와 기업을 옥죄는 정책이 동시에 추진되는 모순된 현실의 종착점은 어디일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