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6월 6일 밤 서울 한남동 관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통화하고 있다(왼쪽 사진). 약 20분간 이뤄진 정상 간 첫 통화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이 대통령을 방미 초청했다고 대통령실은 밝혔다. /대통령실·AP 연합뉴스

트럼프 관세 폭탄을 한미 정상회담으로 풀어야 하는 것은 관세를 조금이라도 낮출 수 있어서가 아니다. 이 큰 문제가 혈맹 사이인 한미의 정상이 단 한 번 마주 앉지도 않은 채 결정 나는 것 자체가 심각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미 트럼프가 정한 시한인 8월 1일까지 시간이 없어 정상회담은 어려울 것 같다. 이는 이재명 대통령과 트럼프 행정부 관계의 미래에 있을지도 모를 풍파를 예고하는 것 같아 걱정이다.

트럼프는 공개적으로 ‘이재명’이란 이름이나 한국의 새 정부에 대해 직접 언급한 적이 없다. 그러나 백악관은 이 대통령 당선 하루 뒤 “미국은 민주 국가에 대한 중국의 개입과 영향력을 우려하고 반대한다”는 극히 이례적인 입장을 발표했다. 당선 축하 논평으로는 엉뚱한 이 입장은 트럼프의 인식을 반영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의 머릿속에서 이 대통령은 ‘친중국’ 성향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문제의 시작인 것 같다.

한국 정치인들은 자신들의 언행이 미국에까지 자세히 전달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미국의 고위 정치인들은 한국 주요 인물들의 미·중 관련 언행을 보고받는 기회가 적지 않다. 주로 주한 미 대사관이 그 역할을 한다. 이 대통령은 대선 주자가 된 이후 미·중 관련 주요 언행이 미국에 보고됐을 것이다. 트럼프도 그 내용들을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민주당 정치인들은 미국을 비난하고 일본을 적대시하는 언행을 지지층용 인기 발언처럼 해 왔다. 이 대통령도 예외가 아니어서 과거에 한 발언들을 모아 놓으면 다시 보아도 충격적이다. “미군은 점령군” 등 헤아리기도 힘들다.

트럼프는 당선 직후 ‘친미파’인 윤석열 당시 대통령과 마러라고에서 곧 만나기로 사실상 약속까지 한 상태였다. 그런데 윤 전 대통령이 계엄으로 탄핵되는 예상 못한 사태가 벌어졌다. 특히 한국 새 대통령에 ‘친중파’로 알고 있는 이 대통령이 유력하게 된 상황은 불만스러웠을 것이다.

트럼프를 직접적으로 자극한 것은 민주당이 주도한 1차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이었을 것으로 짐작한다. 마구잡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그 1차 소추안은 윤 전 대통령이 ‘중국, 북한, 러시아를 적대시한 것’을 탄핵의 이유로 들었다. 트럼프 아닌 어떤 미국 대통령이라도 묵과할 수 없는 문제였다. 그 직후 트럼프와 사실상 한 몸과 같은 매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의 핵심 인사가 서울 관저에서 칩거 중인 윤 전 대통령을 찾아와 만난 것은 생각하기 어려운 사건이었다. 이 자리에서 윤 전 대통령과 그 미국 인사가 어떤 대화를 나눴을지는 짐작할 수 있다.

윤 탄핵 후 트럼프는 한덕수 대행과 통화에서 “당신이 대통령 적임자”라고 했다. 이후 미국 매가 진영 인사들은 ‘윤 전 대통령 탄핵은 중국이 개입한 쿠데타’라며 김문수 후보를 공개 지지했다. 이들은 이 대통령 당선 뒤엔 “한국은 망했다” “공산주의자가 한국 대선에서 승리했다”는 입장도 표명했다. 근거 없는 음모론이라고 무시할 수 없는 것은 이 모든 움직임의 뒤에는 트럼프가 있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지금 백악관 내부엔 이 대통령에 대해 상반된 인식이 혼재돼 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이 대통령이 마음에 들지 않아도 한국은 중요한 동맹국이기 때문에 정상적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국무부의 전통적 시각과 ‘친중파 한국 대통령과의 관계를 최소화하고 동아시아 정책은 일본 중심으로 가면 된다’는 매가(MAGA)적 시각이다. 적어도 지금은 트럼프가 매가적 인식에 더 가까운 것 같은 느낌을 준다. 트럼프가 브라질 우파 전 대통령을 구속한 좌파 룰라 대통령에게 관세로 보복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있다.

2000년대 이후 한국 신임 대통령들은 대부분 취임 2주일 안팎에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 날짜를 확정, 발표했다. 노무현 대통령만 두 달 정도 걸렸다. 박근혜 대통령 때는 미국에서 정상회담을 먼저 발표했고, 윤 전 대통령은 취임도 전에 회담 날짜에 합의했다. 과문한 탓인지는 몰라도 지금은 정상회담의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있다. 정상회담 합의가 가장 중요한 임무였을 국가안보실장은 미국에서 카운터파트인 백악관 안보보좌관 겸 국무 장관과 충분히 얘기도 제대로 나누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재명 대 트럼프’ 관계가 이런 가운데 우리 여권 안에서는 트럼프에 대한 인내심이 바닥나는 듯한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정상회담을 꼭 빨리 해야 하느냐’ ‘트럼프의 요구는 무도하다’는 등이다. 이런 동향도 모두 트럼프의 귀에 들어간다고 봐야 한다.

한미 관계는 양국의 대통령 성향에 따라 부침을 겪어서는 안 된다. 그만큼 막대한 국익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도 그렇지만 한국에는 더 그렇다. 한국에 더 그렇기 때문에 한국 대통령에게 더 많은 인내가 필요하다. 자존심의 문제가 아니다. 트럼프 면전에서 공개 모욕을 당한 캐나다, 우크라이나, 남아공의 국가 수반들은 자존심보다는 인내를 택했다.

실용파를 자처하고 실제 그런 면모도 갖고 있는 이 대통령이 트럼프의 오해를 풀고 친구가 됐으면 한다. 트럼프의 스타일상 의외로 쉽게 풀릴 수도 있다. 트럼프가 발표할 신임 주한 미국 대사가 양국 풍파의 뇌관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그런 일이 없도록 미리 지혜를 모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