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취임 후 첫 외교 무대인 G7 정상회의 참가를 위해 캐나다로 출국했다. 지난해 말 계엄 사태 이후 멈출 수밖에 없었던 정상 외교가 재개된다. 주요국 정상들만큼 한국 국민도 이 대통령을 주목하고 있다. 안보·무역·신기술 등 한국의 미래에 큰 영향을 끼칠 현안 중 외교로 풀 일이 워낙 많기 때문이다.
과거 인권 변호사로 활동했던 이 대통령이기에 특히 기대하는 사안이 있다. 우크라이나군에 붙잡힌 북한군 포로 문제다. 지난 2월 본지 특파원은 러시아 편에서 싸우다 다친 어린 북한군 포로 두 명을 우크라이나에서 어렵게 인터뷰했다. 인터뷰 중 한 명은 확실히 한국행(行)을 원한다는 의사를 표시(“난민 신청을 해서 대한민국에 갈 생각입니다”)했고, 다른 한 명도 선택지 중 하나로 한국을 생각하고 있다는 뜻을 밝혔다.
북한군 포로들은 “잡히는 즉시 자폭하라”는 지시를 받았지만 그러지 못했다고 말했다. 생존했다는 사실 자체가 ‘변절’로 여겨지는 나라, 그곳으로 돌아가면 처형되거나 평생 강제 노동 수용소에서 살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탈북민들은 말한다. 인터뷰가 공개된 직후부터 북한 포로를 한국에 데려와야 한다는 여론이 일었고, 그 방법에 대해 해외 언론과 한국의 전문가들도 의견을 냈다. 당시만 해도 러시아가 북한군의 파병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북한 병사의 신분이 전쟁 포로인가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그 때문에 탈북민에 준하는 절차를 거쳐 한국으로 송환하는 방법이 가장 현실적인 해법으로 거론됐다. 문제는 한국 정부였다. 그즈음 한국은 계엄 사태 이후 이어진 큰 혼란에 빠져 있었고 이 때문에 정부가 제대로 작동할 수가 없었다. 넉 달이 흐른 끝에 이 대통령이 선출됐다.
그사이 큰 변화가 있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4월 “한국(북한)의 영웅들이 러시아 형제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싸웠다”며 북한군의 참전 사실을 공식 확인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러시아·우크라이나 양국에 종전을 압박하는 가운데 공고한 북·러 동맹을 과시하기 위한 의도였을 것이란 분석이 많다. 북한군 참전이 확인됨으로써 붙잡힌 북한 병사들은 ‘전쟁 포로’임이 확실해졌고, 이들의 신병 처리 문제 역시 전쟁 포로에 관한 국제법인 ‘제네바 협약’의 적용을 받게 됐다.
우크라이나·북한이 모두 가입된 ‘제네바 협약’은 종전 후 포로를 본국으로 송환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실제로 대부분의 포로는 전쟁이 끝나면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문제는 우크라이나의 북한군 포로처럼, 신변을 우려해 다른 곳으로 가고 싶어 하는 경우다. 이 경우 제네바 협약상 ‘본국 송환’이란 원칙이 다른 인권 관련 국제법상 원칙과 충돌하게 된다. 이에 대한 가장 치열한 논쟁은 공교롭게도 6·25 전쟁 당시 다수의 북한군·중공군 포로가 공산주의 정권의 보복을 두려워해 본국행을 거부하면서 불거졌다. 당시 유엔은 인권 문제를 들어 제네바 협약의 원칙을 지키되 “포로에게 자유로운 선택권이 보장돼야 한다”고 결의함으로써 ‘본국 송환’보다는 ‘인권 보호’가 앞선다고 못 박았다. 이후 국제 사회도 이 원칙을 따라 왔다. 북한군 포로가 한국행을 원하고 우크라이나·한국 정부가 결심이 섰다면 절차적 문제는 사실상 없다는 의미다.
이번 G7 정상회의엔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참석할 계획이라고 한다. 우크라이나 정부 당국자는 본지에 이미 “북한군 포로의 한국행이 가능할지는 한국 정부에 달렸다”라고 했다. 집단의 이익보다는 개인의 인권, 국가의 권위보단 개인의 결정권을 앞에 두는 것이 진보의 신념 아니었던가. 이 대통령이 젤렌스키와 만난다면 북한군 포로의 한국 송환 문제를 우선순위 최상단에 올리고 이들을 속히 한국으로 데려왔으면 한다. 자유민주주의 정부라면 반드시, 인권 변호사 경력을 내세워온 대통령이라면 특히 더 해야 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