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대선은 이변 없이 이재명 대통령의 완승으로 끝났지만 계엄 사태 이후 시궁창으로 떨어졌던 보수 정치에 새로운 희망의 불씨를 보여주기도 했다. 대선 출구조사에 따르면 18~29세 유권자의 30.9%가 김문수, 24.3%가 이준석 후보에게 표를 던졌다. 두 후보의 표를 합하면 55.2%에 달한다. 18~29세 청년의 절반 이상이 범보수 진영을 지지한다는 것은 우리 정치 역사에 없던 일이다. 30대 유권자도 김 후보 32.7%, 이준석 후보 17.7% 였고 합하면 50.4%다.
이준석 후보 지지를 ‘범보수’로 볼 수 있느냐는 이견이 있을 수 있다. 그간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준석 후보가 사퇴할 경우 그 표는 김 후보와 이재명 대통령으로 갈라졌다. 계엄과 윤석열에 대한 환멸이 워낙 커 김 후보가 이준석 표를 온전히 흡수하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선거 내내 이준석 후보는 김 후보보다 더 날카롭게 이재명 대통령을 비판했다. 그런 점에서 김 후보와 이준석 지지를 범보수로 묶어도 큰 오류는 아니라고 본다.
이재명 후보보다 범보수 측에 더 많은 표를 준 18~39세 유권자는 1336만명으로 전체의 30% 정도에 달한다. 추세를 볼 때 보수 정치가 자기 혁신만 이루면 앞으로 새로 유권자로 유입되는 청년들도 보수에 관심을 둘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한마디로 보수 정치에 미래가 없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로 확실하게 미래가 있는 것이다. 하기에 달렸을 뿐이다.
한국 청년층에게 이준석 후보는 ‘미래 보수’의 등대 역할을 계속하게 될 것으로 생각한다. 노년층엔 이 후보에게 비호감을 가진 사람이 많지만 젊은 층은 그렇지 않다. 일부에서 이준석이 보수표를 분열시켰다고도 한다. 만약 이 후보가 사퇴했으면 그 표의 3분의 1 정도를 가져 간 이재명 대통령이 오히려 득표율 50%를 쉽게 넘었을 것이다.
이번 후보 중에 청년들과 같은 눈으로 세상을 보고 같은 호흡을 하는 정치인은 이준석 밖에 없었다. 이 후보는 8.34%를 얻었다. 이 후보와 비슷한 상황에 있었던 8년 전 유승민 후보는 6.8%를 득표했다. 소수 정당 출신으로서 당선 가능성이 ‘0’인 후보가 이 정도 득표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민주당과 국힘 두 양대 정당 지지자들이 서로에 대한 강한 적개심을 갖고 결집하는 상황에서 이준석에게 표를 준 8.34% 291만명의 국민은 크든 작든 ‘보수의 미래’를 살려두고 싶었던 마음이었을 것으로 짐작한다.
한동훈도 대중 정치인으로 더 발전하면 보수의 미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동훈은 당내 다수파인 친윤 그룹과 태극기 세력의 절대적 비토에도 국힘 경선 결승에 오르는 저력을 보여주었다. 앞으로 이준석·한동훈 두 젊은 정치인의 경쟁은 보수 정치의 활력소가 될 수 있다. 국힘 김용태 비대위원장(경기 포천가평), 김재섭 의원(서울 도봉갑), 개혁신당 천하람 의원등도 보수가 가진 미래다.
이들 모두 갈 길은 멀다. 이준석은 노년층과 젊은 여성들의 반감을 극복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이번 대선에서 18~39세 여성의 이준석 지지는 같은 나이 남성들의 3~4분의 1에 불과했다. 정치인으로서 아킬레스건이 될 수 있다. 한동훈은 윤석열 이후 약점이 된 ‘검사’라는 경력과 불통 독단 이미지를 넘어서야 한다.
젊은 보수 정치인들이 넘어야 할 가장 큰 벽은 국힘 그 자체다. 국힘 당원들과 주변 강성 세력은 애국적이겠지만 고루하게 느껴진다. 특히 일부는 비상식을 넘어 몰상식한 모습까지 보인다. 보수 혐오의 한 원인이다. 계엄이라는 대형 참사가 발생했으면 피해를 최소화하고 이를 극복할 생각을 해야 하는데 이들은 ‘뭐 잘못됐느냐’고 반발한다. 전략적 사고 없이 감정적으로 행동해 자해를 한다. 이들에게 좌우되는 정당에서 젊은 보수는 질식할 가능성이 있다.
만약 민주당이 국힘의 처지였다면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은 ‘오세훈 대 한동훈’이 됐을 것이고 이준석과의 단일화로 갔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 상황에선 판 자체를 완전히 바꿔야 산다는 전략적 사고가 민주당엔 넘쳐난다. 영남 출신인 노무현, 문재인, 이재명이 모두 그런 전략에서 탄생했다. 이런 모습은 지금 국힘 당원들과 주변 세력에게선 기대하기 힘들어 보인다.
하지만 불과 4년 전 국힘 당원들은 30대 이준석을 당 대표로 뽑기도 했다. 국힘 당원들은 윤석열의 반대에도 한동훈을 당 대표로 선출했다. 미래 있는 보수로 갈 토대가 당내에 분명히 존재한다는 뜻이다. 새로 태어날 보수 정당이 청년 당원들을 받아들여 당 전체의 면모가 바뀌면 고루 아닌 혁신, 비합리 아닌 합리, 아집 아닌 유연한 전략, 과거 아닌 미래가 보수 안에서 숨 쉴 수 있게 될 것이다.
보수 정치는 작년 12월 3일 이후 악몽과 같은 구덩이에 빠져 허우적대기만 했다. 그제 대선은 모든 엉망진창의 종합 결정판이 될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 속에서 작지만 큰 희망의 불씨 하나를 보았다. 이 불씨가 죽지 않고 좋은 보수, 좋은 정치, 좋은 나라로 가는 미래를 열며 활활 타오르길 고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