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층 유권자들이 오해하고 있는 사실은 선거에서 보수 정당이 이기는 게 정상이고 진보 정당이 이기는 건 이변이라는 것이다. 지금 민주당 지지는 ‘호남표’+‘40~50대’+’박탈감을 느끼는 계층’의 연합으로 이루어져 있다. 전국 선거에서 투표율이 높으면 이들이 승리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40~50대는 전체 유권자의 37.5%에 달해 연령별 최대다. 60대 이상 유권자보다 6% 포인트 이상 많다. 이들이 거의 일방적으로 민주당을 지지하고 있다. 이들은 나이가 들어 60세가 넘어도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인구 수십만에서 100만 안팎의 서울 주변 도시들은 민주당의 아성이 됐다. 이제 민주당이 이기는 게 정상이고 국민의힘이 이기는 게 이변이다. 지난 대선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이재명 대표에게 크게 이겨 마땅했지만 0.7% 승리에 그쳤다. 그 바탕에 이런 유권자 구조가 있다. 대선 승리의 여세를 몰아 지방선거도 이겼지만 거기까지였다.
이런 상황이라면 국민의힘은 모을 수 있는 표를 다 긁어모아야 이길까 말까다. 그런데 윤 대통령은 대선 승리를 가져다줬던 나름의 선거 연합을 해체해버렸다. 만약 윤 대통령이 취임 뒤 이준석, 유승민, 안철수, 나경원 등을 우대해 강력한 우군으로 만들었다면, 김건희 여사 디올 백 사건 때 즉시 사과하고 도이치모터스 사건 특검을 총선 후에 실시하겠다고 약속했다면, 이종섭 전 국방장관을 호주 대사에 임명하는 무리수를 두지 않았다면 어제 신문들 1면 제목은 ‘국민의힘 제1당, 이재명 조국 위기’일 수도 있었다.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결국 모든 문제는 윤 대통령, 더 정확히는 윤 대통령 부부에게 있다.
이번 선거에서 윤 대통령이 그토록 증오하며 내쳤던 이준석, 안철수, 나경원이 당선된 것과 윤 대통령 정부를 낳고서 출산 휴가를 갔다는 조롱을 받았던 추미애와 내로남불의 대명사 조국이 당선된 것은 상징적이다. 여야 모두에서 윤 대통령과 대척점에 섰던 사람들이 어려워 보였던 재기에 성공했다. 모든 문제의 시작과 끝이 윤 대통령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윤 대통령이 “국민 뜻을 받들어 국정 쇄신”을 약속했다. 그렇게 되기를 소망한다. 하지만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참패 때도 같은 약속을 했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이 와중에 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갈 길이 바쁘다. 그가 받고 있는 혐의들 중 최소 몇 개는 유죄가 나올 것이다. 3년 안에 대법원 확정 판결까지 나오면 대선 출마길이 막힌다. 이 대표 입장에선 3년간 윤 대통령을 쉴 새 없이 흔들어 확실한 정국 주도권을 갖고 있어야만 한다. 구속영장도 그렇게 피했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협치’를 하는 흉내를 잠시 낼 수 있을지 모르나 오래가기 힘들 것이다.
충돌의 시작은 김건희 특검이 될 가능성이 높다. 민주당은 선거 유세를 통해 김건희 특검과 해병대 채 상병 사망 사건 특검에 대한 지지자들의 강한 요구를 실감했다고 한다. 22대 국회가 시작되면 이들 특검이 최우선 리스트에 오를 것이다. 김건희 특검법이 또 국회를 통과하면 윤 대통령이 다시 거부권을 행사할지가 문제가 된다. 윤 대통령 스타일상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거부권을 행사해도 재의결 때 국민의힘에서 반란표가 나올 지 모른다. 국민의힘에서 8명만 김건희 특검에 찬성하면 특검법은 통과된다. 지금 국민의힘에서 심정적으로 윤 대통령 부부에 반발해 김건희 특검에 동조하는 사람은 수십 명이 넘을 것이다. 이런 최악의 과정을 통해 김건희 특검이 성립하면 윤 대통령이 어떻게 대응할지 주목된다. 평소의 윤 대통령 스타일이라면 큰 사달이 벌어질 수 있다.
여권 내부적으론 윤 대통령과 한동훈 위원장의 충돌도 위험 요인이다. 추측하건대, 윤 대통령은 선거 참패의 책임을 한 위원장에게 돌리고 있을지 모른다. 한 위원장이 공천을 잘못하고, 선거운동을 잘못해 졌다는 것이다. 여권 사람들 얘기를 들어보니 두 사람 관계는 생각보다 심각하다고 한다. 국민에게 두 사람 갈등은 “김건희 여사 문제를 국민 눈높이에서 봐야 한다”는 한 위원장 입장 발표로 노출됐지만 그 전에 이미 한동훈의 부상(浮上)이 윤 대통령 눈에 거슬렸다고 한다. 당장 한 위원장 후임을 뽑는 당 대표 선거가 두 사람 충돌과 당내 갈등의 도화선이 될 수 있다.
선거에 앞서 보수적인 사람들조차 “윤 대통령은 혼이 나야 한다”고들 했다. 그런데 너무 많이 혼이 났다. 심하게 균형이 무너진 승부는 협치로 가는 길이 될 수도 있지만, 윤 대통령과 이 대표 등의 성격과 여건을 보면 그 반대가 될 우려가 크다. 그런 일이 없어야겠지만 어느 한쪽이라도 자제하지 않으면 앞으로 3년간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일단 안전벨트를 단단히 매는 것이 좋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