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교통부 장관이 “내년 4월까지 시간을 드리겠다. 사는 집이 아니면 파시라”고 겁을 줬던 게 정부 출범 석 달 만인 2017년 8월이었다. 민주당 전략기획위원장이 “이달 말에서 다음 달 초면 집값 안정을 체감하게 될 것”이라고 했던 건 작년 이맘때였다. 한두 달이 그냥 흐르자 “올 연말, 늦어도 내년초엔 반드시 집값이 잡힌다”는 장담이 뒤를 이었다. 지난 6월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를 앞두고 “매물이 쏟아져 나올 것”이라더니 그 전망도 어긋났다. “집값 물어 간다”고 문(文) 정권 양치기들이 예고했던 늑대는 결국 오지 않았다.

경실련 조사 결과 문 정부 4년간 서울 아파트값이 93% 올랐다. KB부동산의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 가격은 11억원을 돌파했다. 미화(美貨)로 환산하면 백만달러다. 서울 아파트 한 채 있으면 부자라는 뜻의 ‘백만장자’ 반열에 오르게 된다. 근로자 월급을 모아 서울 25평 아파트를 살 수 있는 기간이 박근혜 정부 21년에서 문재인 정부 36년으로 15년이나 늘어났다.

8월 첫째 주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이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8일 서울 시내 아파트 단지의 모습. /뉴시스

노무현 대통령은 “부동산 빼놓고는 꿀릴 게 없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부동산 때문에 죽비로 맞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고 했다. 두 사람은 엘튼 존의 “미안하다는 말은 정말 하기 힘들어”를 주제가처럼 여긴다. 좀처럼 잘못을 인정하는 법이 없다. 그런데도 부동산값 폭등만큼은 변명할 도리가 없었던 모양이다.

물건 값이 치솟는 건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해서다. 사람들이 살고 싶은 아파트가 충분하면 집값이 오를 이유가 없다. 노태우 정부 때 200만호 정책으로 부동산 시장이 10년 이상 안정됐다. 새 아파트를 지으려는 주택조합은 지금도 사방에 널려 있다. 재개발, 재건축이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면 언젠가 아파트값은 꺾이게 마련이다. 노 정부도, 문 정부도 이 해법을 거부했다. 집값으로 돈 버는 꼴을 보기 싫어서다.

홍남기 경제 부총리는 “주택을 통한 불로소득은 어떠한 경우에도 절대 허용하지 않겠다”고 했다. 김부겸 총리는 “집값이 오른 것은 불로소득이고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고 했다. 부동산 양도 차익을 범죄 취급한다. 투기꾼들은 걸러내고 선량한 실수요자에게만 집을 공급하겠다고 한다. 자신이 거주할 집을 찾는 실수요자도 앞으로 값이 오를 만한 집인지를 먼저 따진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보유 자산 중 부동산 비율이 절반을 훨씬 넘는다. 집값 전망을 신경 안 쓰면 그게 이상한 일이다.

실수요와 투기 수요가 뒤엉켜 있는 게 부동산 시장이다.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에서 고리대금업자는 돈 못 갚은 채무자에게 살 1파운드를 도려내라고 요구한다. 판사가 “살 1파운드 베어가라. 대신 피는 한 방울도 흘리면 안 된다”고 하자 포기한다. 실수요자에게 피해를 입히지 않으면서 투기 수요만 도려낼 방법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문 정부의 주택 공급은 시세 차익이 나지 않는 공공개발 방식만 고집한다. 오랜 세월을 기다린 대가를 챙기려는 주택 조합원들은 “그럴 바에는 재개발, 재건축 안 하겠다”고 한다. 정부가 발표했던 대규모 공급 대책이 헛바퀴만 도는 이유다. 자산 가치를 불리고 싶은 자연스러운 욕구를 범죄로 몬 것이 아파트 수급 불균형을 낳고, 집값 폭등을 불렀다.

문재인 대통령에게 올리는 ‘시무 7조’로 유명해진 논객 조은산이 쓴 ‘신(新) 대깨문의 일기’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내가 사는 서울 아파트 값이 20억원을 돌파했다. 지난 총선 직후, ‘민주당이 득세했으니 집값이 더 오를 것이여. 자네도 얼른 하나 사놔’라는 지인의 권유에 전세에서 자가로 갈아탄 덕분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을 어떻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김창균 논설주간

정부가 세금과 규제로 집값을 잡겠다고 으르렁댈 때마다 집값이 뛴다는 걸 온 국민이 알게 됐다. 그런데도 집권당 대선 후보들은 노무현, 문재인 정부가 실패한 그 코스를 그대로 따라가겠다고 다짐한다. 선두 주자인 이재명 경기지사는 “집값은 강력한 규제가 답”이라고 대놓고 말한다.

‘부모 찬스’에 빚까지 끌어 모아 집을 사는 20대가 늘어나고 있다는 통계가 나왔다. 젊은 층이 앞으로 집값이 오른다고 보고 있다는 얘기다. 전세로 신혼집을 마련하려다 ‘영끌 구매’로 방향을 튼 청년에게 이유를 물었다. “정권 바뀌면 집값이 떨어지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대선판이 심상치 않아요.” 아파트값 폭등 시즌 3에 대비해 보험 드는 심정으로 집을 샀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