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한국 정치는 준전시(戰時) 상태다. 여야는 작년 말 계엄 사태 후 9개월째 전쟁 중이다. 여권 내부도 갈라져 있다. 대통령과 여당 대표의 생각이 달라 보인다. 야권은 그야말로 지리멸렬이다. 국민도 사분오열돼 있다. 토머스 홉스의 말을 빌리자면 ‘만인에 의한 만인의 투쟁’ 상태다.
갈라진 나라를 통합해야 한다. 대통령의 몫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그 적임자로 우상호 정무수석을 택했다. 그는 합리적이고 원만하다. 누구를 만나도 화내지 않고 웃으며 대화한다. ‘의회주의자’라는 호칭이 늘 따라다닌다. 어떻게 하면 정치적 내전을 끝내고 국정을 정상화할 것인가. 우 수석은 “계엄·내란 수사가 끝나는 대로 대화 정치를 신속히 복원할 것”이라고 했다. 정청래 대표와 유튜버 김어준씨가 ‘여의도·충정로 대통령’으로 불리는 것에 대해선 “과장된 얘기이고 지금 대한민국을 이끄는 이는 이 대통령 한 분”이라고 말했다.
기업과 노동, 두 마리 토끼 잡겠다
-이 정부 100일 가장 큰 성과와 아쉬운 점은?
“계엄으로 붕괴된 국가 시스템을 정상화하고 경제도 숨통이 트이게 했다. 조국(조국혁신당 비대위원장) 사면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실망한 국민께 이해를 구한다.”
-실용을 표방해 놓고 기업을 으르고 달래는 듯하다.
“이 대통령은 일관되게 실용적이다. 이중적이지 않다. 다만 상법과 노동은 국제 표준에 맞춰달라는 거다. 그것 때문에 기업 망하게 하지 않는다. 국가 재정과 R&D 투자로 기업을 돕고 돈 벌게 해주려 한다.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는 것이다.”
-노조에는 어떤 변화를 요구하나.
“자녀 특혜 채용 등 불공정한 노조 관행을 개선하라고 얘기하고 있다.”
-신규 원전 못 짓는다는데 ‘탈원전 시즌 2’인가.
“아니다. 기존 원전은 풀가동한다. 다만 새로 짓는 것보단 신재생에너지로 가는 게 좋다는 것이다. 원전 수출 확대와도 모순된 게 아니다.”
특검법, 여당과 사전 협의했다
-내란특별재판부는 위헌 논란이 크다.
“내란재판부를 대법원장이 임명하면 위헌이 아니라는 뜻이다. 정치권이 특정 판사를 지정하겠다는 게 아니다. 위헌적 요소를 없애면 된다. 내란 재판이 너무 느리게 진행돼서 나온 얘기다. 재판부가 연말까지 재판을 끝내겠다고 했다. 신속하게 재판하면 내란재판부는 추진할 필요가 없다. 사법부는 독립돼야 하지만 국민 뜻과 무관하게 움직여도 된다는 건 아니다.”
-대법관 증원이 대법원 장악이나 이 대통령 무죄 만들기 용이란 지적이 있다.
“대통령은 이런 오해 때문에 ‘입법을 미루자’ ‘법원 입장을 듣고 신중하게 추진하자’고 했다. 하지만 여당에 하라 말라 지시할 순 없다. 정당의 자율성을 훼손하는 일이다. 대법원과 여당이 대화로 풀 문제다.”
-여당이 야당과의 특검법 합의를 파기했다. 대통령실과도 사전 협의했나.
“김병기 원내대표가 야당과 특검법 협상을 한다는 사실을 공유해 왔다. 소통이 있었다. 여당 내부에서도 소통이 이뤄진 것으로 안다. 그런데 지지자들이 반발하자 정청래 대표가 즉각 반응해 번복한 것이다. 그 누구의 책임도 아니다.”
-협치를 주문한 대통령이 합의에 반대한 것은 모순 아닌가.
“지지자들의 의사를 존중하는 차원에서 원론적 입장을 말한 것이다. 대통령은 야당의 여·야·정 민생 협의체와 주식 양도세 50억원 요구를 다 수용했다.”
-민주당이 ‘국힘 해산’을 요구하는데 해산해야 하나.
“뭐라고 답해도 논란이 일 테니 노코멘트.”
-대화 협치를 이끌 적임자라고 하는데 성과가 부족하다.
“계엄 사태로 근본적 한계가 있다. 윤 정부가 총칼로 의원들을 잡아가려 한 점을 이해했으면 한다. 사법적 처리가 끝날 때까지 충돌이 있을 수밖에 없다. 특수한 과도기다.”
-그간 정청래 대표의 독주가 심했다. ‘명·청 갈등’ 아닌가.
“대통령과 대표 간 입장 차는 있지만 갈등은 없다.”
-‘정청래 여의도 대통령’이라는 말이 나돈다.
“과장된 얘기다. 정당 대표는 선출된 권력이다. 나는 임명직인데 대표가 내 말을 들어야 하나. 정치 후배이지만 당대표로 존중해야 한다.”
-유튜브도 징벌적 손배 대상이라고 했는데, 김어준씨는 언론인가 유튜브인가.
“큰 틀에선 뉴스를 생산하고 언론 역할을 하지만 기존 언론은 아니다. 언론으로 규정해서 대통령실에 출입 등록한 것도 아니다. 돈 벌기 위해 악의적으로 가짜 뉴스를 생산하면 보수·진보 유튜브를 가리지 않고 적용하자는 것이다.”
-김씨의 여권 내 영향력이 과도하다. 일각에선 ‘충정로 대통령’이라는데.
“구독자가 많고 영향력이 큰 건 사실이지만 대통령에 비할 수준이 아니다. (정 대표와 김씨 등) 영향력 있는 이런저런 사람들을 자꾸 대통령이라고 지칭하는데 바람직하지 않다. 모든 게 다 과장이다. 지금 대한민국을 이끄는 대통령은 이재명 한 분이다.”
대통령실 실세는 김현지 아닌 강훈식
-인사 논란이 크다.
“인사가 제일 어렵다. 솔직히 후보자들이 10~20년 전에 무슨 말을 했고 주변인과 어떤 관계였는지 제보가 없는 한 다 알기 힘들다. 신의 영역이 있다. 계속 보완하지만 완벽한 검증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내부 반성을 토대로 인사수석을 신설했다.”
-대통령 최측근인 김현지 총무비서관이 인사를 좌지우지했다는데.
“초기 대통령실 비서관·행정관 채용 때는 김 비서관이 주도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김 비서관에게 권한이 집중됐다는 세간의 얘기는 사실이 아니다. 30일 정도 지나서는 완벽하게 강훈식 비서실장 체제로 인사가 돌아간다. 김 비서관이 실세라고 하는데 실세는 강 실장이다.”
-김 비서관의 경력·학력 등 신변이 불투명하다는 지적이 있다.
“취재를 잘해 보시라. 대통령과 관계가 돈독해서 계속 보좌해 온 건 맞다. 하지만 모든 일이 김 비서관 중심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다. 과도한 관심과 억측이다. 김 비서관은 똑똑하고 자기 본분에 충실한 비서다.”
-이 대통령의 변호인 출신, 사시 동기 등이 너무 많이 기용된 것 아닌가.
“누구를 말하나. 그런 비판이 있다면 잘 경청하겠다.”
-내년 지방선거에 우 수석을 비롯해 총리·비서실장도 출마설이 나온다.
“정치 호사가들 얘기다. 대통령실은 지방선거에 관해 일체의 논의나 준비를 하고 있지 않다.”
-국민의힘 자치단체장들에 대한 수사·감사도 줄줄이 이어지는데.
“대통령실이 추진한 게 아니다.”
-조국 비대위원장이 내년에 출마한다는데 배신감은 안 느끼나.
“정치 활동 재개할 것을 알고 사면한 것이다. (인천 계양을 출마 여부 등에 대해) 우리가 뭐라고 할 문제가 아니다. 여당이 정리할 일이다.”
美 감당하기 힘든 요구 고민 크다
-조지아 근로자 구금 사태와 관세 문제로 미국과 갈등이 심상찮다.
“구금 사태는 해묵은 비자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으려 한다. 관세 협상에서 미국이 우리가 감당하기 힘든 어려운 요구를 하고 있다. 내용은 밝힐 수 없지만 무척 고민스럽다.”
-트럼프 미 대통령이 내달 APEC 정상 회의에 오나.
“올 가능성이 크다. 이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 간에는 신뢰 관계가 형성됐고 케미도 좋다. 방한하면 두 분이 함께 골프 칠 수 있도록 추진 중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올 가능성이 큰데 트럼프 대통령과 회동을 기대한다.”
-김정은 방한 가능성은?
“별로 없다. 하지만 남북 관계 진전을 위해 한미 군사 훈련을 무기한 연기하거나 축소하는 문제에 대해 결단을 내릴 필요가 있다. 과거 정부에서도 북한은 이 문제에 일관된 태도를 보였다.”
-이 대통령은 과거 ‘자위대 군홧발’ 얘기를 했는데 취임 후 달라졌다.
“과거사 인식이 바뀐 건 아니다. 그래도 경제 협력과 교류는 확대해야 한다는 김대중 전 대통령 노선을 따르는 것이다. 일본에 새 리더십이 들어서더라도 우리를 자극하지 않는다면 관계를 악화시킬 이유가 없다. 상호주의보다는 우리가 먼저 풀고 변화를 유도하자는 실용 외교다.”
86 운동권 역할 이제 끝났다
-우 수석이 대통령의 정치 선배인데.
“나와 대통령은 케미가 좋다. 나랑 얘기할 때 가장 많이 웃는다. 의견이 100% 일치하진 않지만 내 조언을 많이 받아들인다. 하지만 나는 참모다. 대통령이 지시하면 이행한다.”
-86세대 운동권의 맏형인데, 운동권의 시대는 끝난 건가.
“독자적 정치 그룹으로서의 86 운동권의 역할은 이제 사라졌다. 최근 4~5년간 같이 모여서 의논하고 공동 행동을 한 적이 없다. 다 뿔뿔이 흩어졌다. 더 이상 86 운동권으로 의미를 두지 말라.”
-대통령실에 있으면서 꼭 이루고 싶은 일은.
“나는 의회주의자이고 대화론자다. 그 때문에 당내에서 ‘수박’으로 몰리기도 했다. 하지만 정치가 복원되고 대화와 타협이 꽃피는 때가 와야 한다. 그게 이 대통령 성공을 위해서도 중요하다. 지금은 쉽지 않지만 내란 정국이 마무리되면 협치의 정국이 열릴 것이다. 경쟁하면서도 협력·타협하는 문화를 정착시키고 싶다.”
☞우상호
1962년 강원 철원에서 출생, 87년 6월 항쟁 당시 연세대 총학생회장으로 민주화운동에 앞장섰다. 2000년 새천년민주당의 ‘젊은 피’로 영입돼 86 운동권의 맏형 역할을 했다. 당 대변인을 8차례나 맡았고 원내대표·비대위원장을 지냈다. 지난 대선에서 이재명 캠프 총괄선대본부장으로 선거를 지휘한 뒤 정무수석으로 발탁됐다. 특유의 친화력과 온화한 리더십으로 여야와 당내 이견을 합리적으로 조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