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6월 개봉한 영화 ‘브로커’는 베이비 박스(아기 위탁함)에 버린 신생아를 빼돌려 돈 받고 팔아넘기려는 브로커 일당 얘기를 다뤘다.
현실은 영화보다 가혹하다. 베이비 박스의 아기는 생명은 보전할 수 있다. 하지만 가출 청소년 모임인 ‘가출 팸’ 등에서 미혼모가 몰래 출산해 제3자에게 넘긴 아기는 ‘불법 시장’에서 물건처럼 유통된다. 생사를 장담할 수 없는 비극을 겪기도 한다.
최근 감사원 감사에서 드러난 것처럼 정부와 병원은 영아의 출생신고를 확인하지 않고, 신고를 안 해도 ‘과태료 5만원’이 전부인 현 제도의 문제를 정부는 방치하고 있다. 부모가 출생신고를 안 하면 정부는 확인할 방법도, 의무도 없다. 이런 법적·제도적 미비가 불법 ‘영아 시장’을 만들고 아이들을 사지로 내몰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23일 카카오톡 오픈 채팅방과 텔레그램 등에서는 ‘영아 매매’ 글을 수십 건 검색할 수 있었다. 오픈 채팅 검색창에서 ‘미혼모’를 검색하니 ‘영아 위탁 도와드림’ ‘미혼모 출산·위탁 지원’ 등 채팅방이 줄줄이 나왔다. ‘영아 입양을 원한다’는 댓글을 올린 사람은 이날 본지에 “(입양) 기관을 끼고 하려면 조건이 까다롭고 기간도 오래 걸린다고 해서 직접 찾는 것”이라고 했다. 이런 ‘영아 시장’에선 출생신고가 안 된 아기들이 인기라고 한다. 당국 등의 추적을 받을 일도 없고 어떻게 처리해도 흔적을 감추기 쉽기 때문이다.
인터넷에 ‘미혼모 입양’이라고 입력하면 ‘아이를 주겠다’는 글이 수십 건 쏟아진다. 한 미혼모는 “임신 32주 차다. 임신·출산 사실은 아무도 몰라야 한다”고 썼다. “몰래 아이를 낳아서 입양 보내고 싶다”는 글도 올라왔다. 여기에 ‘키워주겠다’ ‘도와주겠다’ ‘처리해주겠다’는 댓글을 다는 사람은 ‘영아 거래’ 브로커일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아동 지원 기관 등에 따르면 브로커들은 “출산과 산후 조리 비용 수백만원을 대주겠다”고 접근한다. 아이 상태와 혈액형을 확인한 뒤 “잘 아는 조산사가 있다”며 병원이 아닌 곳에서 출산하기를 유도한다. 출산 기록이 없는 ‘유령 아기’가 불법 거래에 유리하기 때문이다. 브로커들과 결탁한 일부 병원에서는 입양할 부모 이름으로 출산이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거래 성공’ 비용은 아이 한 명당 수천만원으로 알려졌다.
본지 기자가 접촉한 여성들 중 일부는 “아이를 돈 받고 넘기고 싶진 않다. 돈거래가 없으니 불법은 아니지 않으냐”고 했다. 그러나 입양 기관을 통하지 않으면 돈을 받든 안 받든 입양특례법 위반으로 형사처벌 대상이다. 돈을 받으면 이 법의 ‘아동 매매죄’가 적용돼 10년 이하 징역형을 받는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아동 매매 혐의로 6명이 검거됐다.
경찰에 따르면 신생아 거래는 주로 산모가 퇴원하는 날 산부인과에서 벌어지는 경우가 많다. 오영나 한국미혼모지원네트워크 대표는 “(영아 매매) 브로커들이 있는데 보통 아기를 건네주고 입양을 원하는 사람들과 현장 직거래를 한다”고 했다.
경찰은 전문적 브로커가 다수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2016년 경기 부천에서는 돈을 주고 아이를 넘겨받은 A(42)씨가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신생아 매매 브로커’였던 A씨는 인터넷에 글을 올린 미혼모에게 접근한 뒤 산부인과를 찾아가 병원비를 결제해주고 아이를 데려온 것으로 밝혀졌다. 충남 논산에선 20대 여성이 미혼모들의 영아 6명을 거래한 일도 있었다.
문제는 이렇게 ‘거래’한 영아들이 유기·학대나 극단적 살해 등 범죄에 무방비 상태가 된다는 점이다. ‘베이비 박스’의 양승원 사무국장은 “인터넷으로 아기를 거래하는 건 위험천만한 일”이라며 “어떤 사람에게 아기가 갈지도 모르고 어떤 끔찍한 일을 당할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는 “브로커를 통해 불법 입양을 하려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겠느냐”며 “좋은 사람의 불법 입양은 영화 같은 얘기”라고 했다. 경찰이 파악한 영아 유기는 매년 100~180여 건에 달한다.
한편 경기남부경찰청은 자녀 둘을 출산한 직후 살해한 혐의로 친모 고모(35)씨를 23일 구속했다. 고씨는 자녀 시신을 집 냉장고에 수년간 보관해왔으며 이날 예정된 구속영장 실질 심사를 포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