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담배를 비롯한 신종 담배는 오랜 기간에 걸쳐 도입한 최소한의 담배 규제들마저 무력화시키고 있다. 현재 담배 회사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클릭 몇 번이면 전자담배 기기를 택배로 받을 수 있다. 여기에 ‘친구 추천’ ‘체험 행사’ 등 각종 판촉·광고에 여과 없이 노출된다. 전통적인 궐련에선 금지된 판매 방법이다. 액상형 전자담배는 인터넷뿐 아니라 시내 곳곳의 ‘무인 판매점’에서도 손쉽게 구할 수 있다.
청소년에게 전자담배 판매는 불법이다. 하지만 SNS(소셜미디어) 대리 구매 등 단속이 불가능할 정도로 범람하고 있다. 전자담배 기기와 합성 니코틴 등이 담배 규제에서 벗어나 벌어지는 일이다. ‘전자담배가 덜 해롭다’ 등 담배 회사의 주장이 인터넷에 퍼지면서, 실내·공공장소에서 불법 흡연도 흔히 볼 수 있다.
5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우리나라를 포함해 182국이 가입한 세계보건기구(WHO) 담배규제기본협약(FCTC)은 “가열담배(궐련형 전자담배)는 곧 담배”라고 못 박으면서 “신종 담배의 기기 장치도 동일하게 규제하라”고 이행을 의무화한 상태다. 담배 회사들은 일부 검사 결과를 앞세워 ‘궐련보다 낮은 수준의 규제가 타당하다’고 주장하지만, FCTC는 “신종 담배를 둘러싼 건강 관련 입증되지 않은 주장을 방지해야 한다”고 정면으로 반박한다. 김수영 국가금연지원센터장은 “전자담배의 유해성을 올바르게 판단하려면 자의적으로 선택된 일부 성분이 아닌 모든 유해 성분을 대상으로, 담배 업계 지원을 받지 않은 독립적 연구를 통해 검증해야 마땅하다”고 말했다.
실제 호주는 작년부터 의사 처방 없이는 궐련형·액상형 전자담배를 구매하지 못하도록 하는 규제를 시행 중이다. 뉴질랜드는 액상 전자담배의 맛과 향에 대해서도 판매를 제한할 정도다. 현재 76국에서 궐련형 전자담배 규제를 시행 중이며, 싱가포르·태국 등 10국은 판매를 금지했다. 액상형 전자담배도 109국에서 규제하고 28국에서는 판매를 금지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담배사업법에서 담배를 ‘연초의 잎’으로 국한해 놓음으로써 전자담배 등에 대해서는 규제 사각지대가 발생하고 있는 게 문제다. 담배의 정의를 ‘연초의 줄기·뿌리’와 ‘합성 니코틴’으로 확대해 이 문제를 해결하자는 법안들이 발의돼 있다. 전자담배 기기 등의 무분별한 판촉과 인터넷에 영리 목적의 이용 글을 올리는 행위를 제한하자는 정부안도 국회에 계류 중이다. 윤석열 정부 국정 과제인 담배 유해 성분 평가·공개를 비롯해 담뱃갑 경고 그림 면적 확대, 무(無)광고 표준 담뱃갑 도입, 가향(加香) 물질 첨가 금지 등 궐련과 전자담배를 아우르는 규제를 동시에 추진해야 한다는 의견이 의료계를 중심으로 힘을 얻고 있다.
우리와 달리 미국·영국·캐나다·호주와 유럽연합(EU) 등은 담배 회사들에 담배 성분과 독성·의존성 등 자료 제출을 의무화하고 있다. 자료를 제출받더라도 섣불리 ‘안전하다’고 평가하지 않고 계속 점검한다. 2016년 미 당국 제출 목록에서 빠진 궐련형 전자담배의 발암 물질을 비롯한 유해 성분 56종은 오히려 궐련보다 농도가 높게 나타났다. 미 존스홉킨스대 연구에서는 전자담배 액상에서 2000여 가지의 알려지지 않은 화학 물질이 발견됐다. 임민경 인하대 의대 교수는 “전자담배의 미확인 물질 흡입은 건강을 담보로 한 도박”이라며 “결국 니코틴 중독에 빠지고 이중·삼중 사용으로 금연과 더욱 멀어지기만 할 뿐”이라고 말했다. 질병관리청 담배 폐해 통합보고서는 “담배 노출에는 안전한 수준이 없다”고 했고, 복지부 관계자는 “덜 위험한 담배란 없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금연 프로그램이 잘 구축된 나라로 분류된다. 보건소와 병·의원, 지역 금연지원센터, 금연 상담 전화(1544-9030)와 온라인 서비스(www.nosmokeguide.go.kr) 등을 통해 무상으로 전문적인 상담과 치료약, 금연 보조제 등을 제공한다. 중증 흡연자를 위한 4박 5일 금연 캠프도 운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