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여 백신 예약 접종과 얀센 백신 예약 과정에서 질병관리청이 잇따라 미숙한 관리력을 노출하면서 현장 혼선이 가중되고 있다.
질병청은 지난 2일 “4일부터는 병·의원(위탁의료기관)에서 잔여 백신 예약 접종을 할 때 예비명단 등록 대상을 ’60세 이상'으로 한정한다”고 발표했다가 이날 밤늦게 이를 뒤집었다. 9일까지는 이미 대기 명단에 이름을 올려 둔 60세 미만도 잔여 백신을 맞을 수 있도록 한 것. 이 과정에서 이를 외부에 제대로 알리지 않아 3일 일선 병원에선 종일 문의·항의 전화가 빗발쳤다. 경기도 파주 한 내과의원 원장은 “기존 예약자들이 항의 전화가 와서 난리다”면서 “우리 지역에선 3일 오전 늦게 소셜미디어를 통해 ’60세 미만 잔여 백신 예비명단 유지하라'는 보건소 공지가 떴지만 아직도 어떻게 하란 건지 헷갈린다”고 했다. 민방위·예비군들을 중심으로 진행하는 얀센 백신 접종 예약도 뒤죽박죽이었다. 질병청이 접종 의료기관이 아닌 곳을 예약시스템에 올려놓는 바람에 해당 기관과 접종 대상자들이 입씨름을 벌이는 장면이 곳곳에서 펼쳐졌다.
◇“현장 너무 모르는 탁상행정”
방역 당국은 지난 4월 말부터 AZ 백신 예약 부도(이른바 ‘노쇼’)가 생기면 30세 이상 희망자 누구라도 잔여 백신을 맞을 수 있도록 허용했다. 최대 12명까지 맞힐 수 있는 백신 한 바이알(병)을 한 번 개봉하면 6시간 내 다 소비해야 하는데, ‘노쇼’로 아까운 백신을 버리는 일을 막자는 취지였다. 이에 발 빠르게 예비 명단에 이름을 올린 30~50대는 원래 접종 순서가 아니어도 잔여 백신을 맞을 수 있었다.
그런데 2일 방역 당국은 예고 없이 지침을 바꿨다. 기존 네이버·카카오를 통한 당일 예약은 전 연령층을 대상으로 유지하되, 4일부터 병·의원 예비 명단을 통한 잔여 백신 접종은 ’60세 이상'에게만 기회를 준다고 한 것이다. 치명률이 높은 고령 층 접종을 최대한 높이자는 취지였다. 그러다 이 지침을 갑작스럽게 바꿨다. 3일 “9일까지 ’60세 미만'도 포함된 예비 명단을 활용해 접종할 수 있도록 유예 기간을 두되, 이 경우에도 60세 이상 고령층 접종을 우선하라”고 밝힌 것이다. 양동교 예방접종대응추진단 접종시행반장은 “4일까지 이미 예약한 (60세 미만) 대상자들을 해소하기엔 어렵다는 의견이 있어서 유예 기간을 두기로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일선 병·의원 혼란은 극심했다. 전주 한 병원에선 “대기 명단에 이름을 올리신 60세 미만 예악자 분들께 병원 직원들이 욕 먹어가며 취소 전화를 다 돌렸는데, 다음 날엔 9일까지 유예 기간 둔다는 뉴스가 나와 직원들이 울려고 했다”고 했다. 경기도 한 이비인후과에선 “60세 미만 예비 명단을 무효화시키면 그 항의 민원을 어떻게 감당할 거냐고 지역 보건소에 문의했더니, ‘지침 바뀐거랑 상관 없이 그냥 예비 명단 접종해주라’고 하더라. 현장과 소통하는 노력 없이 지침을 마구 개정해 현장 혼란만 가중된 셈”이라고 했다.
◇얀센도 행정 실수 오락가락
이 같은 질병청의 오락가락 행정 난맥은 얀센 백신 접종 과정에서도 벌어졌다. 지난 1일 얀센 백신 예약 당시 질병청이 얀센 접종의료기관이 아닌 의료기관을 접종 가능 기관으로 등록하는 행정 실수를 하면서 예비군·민방위 대원들 기존 예약이 취소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서울 성북구 한 병원은 앞서 얀센 백신 접종 기관에 신청하지 않았지만, 질병청이 예약시스템에 이 병원을 접종 가능 기관으로 등록해 약 140여명이 얀센 백신 접종을 예약했다. 병원 측은 뒤늦게 이 사실을 파악해 예약자들에게 “우리는 얀센 접종의료기관이 아니라 접종이 불가하다”고 통보했으나, 이후 예약자들 항의가 계속돼 결국 질병청에 얀센 백신을 공급받아 예약자들을 접종하기로 했다. 이 병원 측은 “질병청의 황당한 실수로 일이 벌어졌는데 예비군들이 낙담하는 걸 그냥 둘 수 없어 병원 차원에서 얀센 백신을 접종하기로 한 것”이라며 “질병청의 접종 방침이 날마다 바뀌는 탓에 병원마다 혼란과 불편이 크다”고 했다. 현재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는 일부 예비군과 민방위 대원 등이 “예약한 의료기관이 얀센 백신을 접종할 수 없다고 취소 통보를 해왔다”는 볼멘소리가 이어지고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질병청은 실태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양동교 접종시행반장은 “얀센 백신 접종 계획이 급박하게 추진되면서 얀센 접종에 참여 의사를 보였다가 취소한 의료기관 등이 있어 이런 문제가 발생한 것 같다”며 “현재 이렇게 취소된 사례가 얼마인지 파악하고 있다”고 했다. 마상혁 대한백신학회 부회장은 “질병청이 접종 지원을 해주는 게 아니라 되레 접종 혼란을 일으키고 있다”며 “의료 현장과 소통하려는 노력 없는 탁상행정, 병·의원을 마치 자신들 산하 조직처럼 부리는 듯한 태도에 현장 불만은 물론 국민 혼란까지 초래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