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유럽연합) 4대 회원국인 독일·프랑스·이탈리아·스페인이 15일(현지 시각) 아스트라제네카(AZ) 코로나 백신의 접종을 일시 중단하겠다고 선언했다. 접종 후 혈전(血栓·핏덩이)이 생기는 부작용이 발생했다는 보고가 잇따르자 추가 조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접종을 멈추겠다는 것이다.

프랑스와 독일 등 유럽 국가들이 15일(현지시간) 예방 차원에서 아스트라제네카(AZ) 백신 접종을 일시적으로 중단하기로 했다고 현지 언론이 보도했다. 혈전이 발생했다는 보고 이후 접종을 중단한 유럽 국가는 모두 11개국이다. 사진은 프랑스 파리 인근 상피니의 한 병원에서 촬영한 AZ 코로나19 백신의 모습./로이터 연합뉴스

이날 옌스 슈판 독일 보건부 장관은 “부작용이 백신 접종의 효과를 넘어서면 안 된다”며 AZ 백신의 접종을 일시 중단한다고 밝혔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유럽의약품청(EMA)의 판단이 나올 때까지 접종을 멈추겠다”고 했다. 앞서 네덜란드·덴마크·노르웨이·아이슬란드 등도 AZ 백신 접종을 전국적으로 중단했다. 오스트리아·루마니아·인도네시아 등을 포함한 접종 중단 국가는 세계적으로 20국이 넘는다. 이 국가들은 EMA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EMA는 이르면 18일 AZ 백신의 접종 재개 여부에 대한 판단을 내놓을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방역 당국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2분기(4~6월) 국내 AZ 백신 접종 대상자는 770만4400명에 달한다. 최악의 경우 ‘접종 중단’ 결정을 낼 가능성도 있다. 박영준 예방접종추진단 팀장은 16일 “EMA 회의 결과에 따라 예방적으로 접종을 시행하는 것도 고려해볼 수 있을 것이다. 접종 중단도 하나의 선택지로 검토 대상은 된다”고 밝혔다. 질병관리청은 논란이 커지자 “현 단계에선 접종 중단까지 고려하고 있지는 않다”면서도 “전문가들과 함께 다양한 방안을 검토 중에 있다”고 했다.

16일 경기 성남시 야탑역광장에 마련된 코로나 임시선별진료소에서 검사를 받기 위해 시민들이 길게 줄을 늘어섰다. 중앙방역대책본부는 이날 0시 기준 신규 확진자가 363명 늘어 누적 9만6380명이라고 밝혔다. /박상훈 기자

반면 AZ사(社)는 자사 백신을 맞은 1700만명 중 혈전이 생긴 사례는 37건에 불과하며, 이는 백신의 영향으로 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도 이날 “까다로운 영국 의약품규제청이 접종을 중단할 이유가 없다고 판단했다”고 했다. 세계보건기구(WHO)도 접종을 계속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유럽에서 접종 중단이 잇따른 것에 대해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단순히 과학적 이유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며 ‘백신에 대한 불안감'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란 분석을 내놨다. 유럽에선 2009년 신종플루가 크게 유행했을 때 ‘판뎀릭스’라는 백신을 사용했다가 기면증(갑자기 잠에 빠져드는 증세)이 5만5000명당 한 명꼴로 발생해 논란이 됐던 경험이 있다. 또 EU에 대한 AZ 백신의 1분기 공급이 물량 부족으로 당초 예정된 분량의 3분의 1쯤인 3000만회분 수준으로 줄면서 유럽 각국이 접종 중단 결정을 내리기 쉬워졌다는 분석도 있다.

英에선… 아스트라 970만명중 13명 혈전, 화이자 1070만명중 15명

유럽 국가들이 줄줄이 아스트라제네카(AZ) 백신 접종을 잠정 중단하면서 국내서도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대부분 “현재까지 AZ 백신과 혈전(핏덩이) 등과의 인과성은 확인된 바 없다”며 “고령층과 기저 질환자도 코로나 감염 위험을 감안하면 접종을 하는 게 더 이득”이란 입장이다. 하지만 정부가 국민 불안에 지금처럼 소극적·수동적으로 대처하면 백신 불안과 접종 거부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AZ 백신을 둘러싼 논란은 이번이 세 번째다. 지난해 임상 시험 중 참가자에게 용량 절반을 접종하는 등 착오가 나와 미 식품의약국(FDA)이 사용 승인을 하지 않았고 별도 임상이 진행 중이다. 이어 임상 시험 참가자 중 65세 이상이 적어 독일과 프랑스 등에선 65세 이상에 대한 접종을 보류했다. 이번엔 유럽 국가들이 연쇄적으로 접종 후 혈전이 생기는 부작용 등이 우려된다고 나선 것이다.

아스트라제네카 코로나 백신 접종 중단한 유럽 국가

아워월드인데이터 등에 따르면 AZ 백신 접종을 시작하거나 앞둔 국가는 총 76국이다. 이 중 이 백신의 특정 제조 단위나 전체 물량을 일시적으로 접종 중단한 나라는 21국에 달한다.

대다수 전문가는 “AZ 백신을 가장 많이 맞은 영국 사례를 보면 이 백신의 안전성은 우려할 수준이 아니다”라고 한다. 영국 의약품규제청(MHRA)에 따르면 지난달 28일 기준 영국 내 AZ 백신 접종자는 970만명, 화이자 접종자는 1070만명이다. 접종 후 사망 사례는 각각 275명(10만명당 2.84명)과 227명(10만명당 2.12명)으로 큰 차이가 없다. MHRA는 “접종 후 사망자 대부분은 노인이나 기저 질환자로 접종이 사망에 영향을 준다는 과학적 근거는 없다”고 했다.

현재 유럽에서 문제가 되는 혈전과 관련된 폐 색전증이나 심부 정맥 혈전증도 영국 내 AZ 백신 접종자 중엔 13건, 화이자 접종자 중에선 15건이 신고됐다. MHRA는 “혈전이 백신 때문이라는 근거는 현재 없으며 백신 접종 후 보고된 혈전 관련 사례는 자연 발생 비율보다 낮다”고 했다.

영국에서도 우리나라처럼 일상생활이 어렵거나 병원을 찾을 정도로 독감과 유사한 고열과 근육통, 메스꺼움, 구토 등의 이상 반응이 신고된다. 영국 보건 당국은 “증상별로 접종자 10명 중 1명꼴로 이상 반응이 있다”며 화이자 접종자도 비슷한 비율로 이상 반응이 보고된다는 입장이다.

◇국내 이상 반응 신고 외국보다 많아

우리나라는 이날까지 57만5289명이 AZ 백신을 맞았고 접종 후 사망 사례는 16건 나왔다. 10만명당 2.78명으로 영국과 큰 차이가 없다.

다만 우리나라의 AZ 백신 이상 반응 신고 비율은 접종자 중 1.5%로 영국(0.56%)이나 독일(0.76%), 덴마크(0.28%)보다 2~5배쯤 높다. 전문가들은 “코로나 백신 이상 반응은 젊은 층에서 강한데, 국내선 20~30대 의료진들이 먼저 맞으면서 신고율도 높은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AZ 백신은 3상 임상에선 이상 반응 발생 비율이 성인은 39.2%, 고령자는 24.6%였다. 화이자 백신은 참가자의 20.8%가 이상 반응을 보였다. 질병청이 백신 접종자 1만8000여 명을 표본 조사한 결과에선 접종자의 32.8%가 이상 반응을 겪었다고 했다. 임상 시험과 뚜렷한 차이는 없는 셈이다.

◇정부 소극적 대응이 불안감 더 키워

그러나 일부 현장 의료진 사이에선 백신 접종 후 이상 반응의 강도가 생각보다 크고, 빈도 역시 정부 발표보다 훨씬 많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일반 국민들이 느끼는 백신 접종에 대한 불안감도 커지고 있는 게 사실이다. 이상 반응을 “정상적인 면역 반응”이라고 보는 태도는 안이하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고 있다. 한 전문가는 “정부가 지금처럼 이상 반응 문제에 소극적으로 대응하고 대국민 소통과 설득이 부족하면 백신 불안이 더 퍼질 수 있다”고 했다. 현장에서 벌어지는 이상 반응 실태에 대해 정부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 조사하고 그 결과를 국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