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23일 코로나 사태 브리핑에서 “백신 접종 1등 경쟁을 해야 한다는 사회 분위기에 우려를 표한다. 안전성 문제가 중요하기 때문에 (우리 국민이) 세계 최초로 백신을 맞는 상황은 가급적 피해야 한다”고 했다. 정부의 이 발언은 문재인 대통령이 해외 백신 구입을 지난 9월에야 지시하고, 정부 부처는 11월 하순에 백신 도입을 위한 법 규정 검토 등 최소한의 절차를 마쳤다는 보도<본지 12월 23일 자 A1면> 직후 나온 것이다. 정부가 백신 안전성 문제를 들며 해외 주요국들이 모두 구입한 백신을 늑장 도입하는 데 대한 책임을 피하려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본지 취재를 종합하면, 정부가 백신 도입을 위한 법적 절차를 마무리한 것은 올 11월 말이다. 이때는 범정부 차원의 ‘백신 도입 TF’를 가동한 올 6월 이후 5개월이나 지난 시점이다. 이 기간에 국내 백신 개발에 주력할지, 해외 백신을 구매할지 결정하지 못하다 코로나 3차 대유행 사태가 터진 지난달 중순 이후에야 해외 백신 구매 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때는 미국 등 주요국들이 안전성이 검증된 화이자⋅모더나 등 백신을 공격적으로 선구매해 우리가 도입할 물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정부는 그제서야 해외 백신 도입을 위한 절차와 법적 문제점 등을 정부 각 부처에 질의한 것으로 드러났다. 국민의힘 권명호 의원실에 따르면, 질병청은 지난달 23일엔 감사원에 “해외 백신을 선구매해도 문제가 없는지” 질의하고, 24일엔 산업통상자원부에 “대규모 백신 구매 시 WTO 규정에 저촉되지 않는지” 문의해 ‘문제가 없다’는 답변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달 30일엔 외교부에 ‘국외 코로나 백신 관련 동향 파악’ 요청도 했다. 결국 백신 도입 TF 활동 5개월이 지난 시점에 비로소 백신 도입을 위한 법 규정 검토 등을 끝낸 것이다. 의료계에서는 “질병청이 추후 제기될지 모르는 책임을 피하기 위해 뒤늦게 관련 부처 답변을 받아낸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손영래 보건복지부 대변인은 23일 브리핑을 통해 “백신 안전성 문제는 국민을 위해 놓칠 수 없는 중요한 주제”라며 “백신을 세계 최초로 맞는 그런 상황은 가급적 피해야 하고, (우리보다 백신을 먼저 접종한) 나라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한두 달 관찰할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는 점은 굉장히 다행스럽다”고 했다. 안전성이 검증된 유력한 백신을 다른 나라가 선점해 우리로서는 백신 도입 시기를 놓쳤는데도 이를 ‘다행’이라고 한 것이다. 한 예방의학 전문가는 “방역이 잘될 때는 ‘K방역’ 성과 홍보에 열 올리던 정부가, 안 될 때는 백 가지 이유를 대며 변명하고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