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달에 착륙했다!(We landed it on the moon!)” 2016년 3월 인공지능(AI) 알파고가 첫 대국에서 이세돌을 꺾자 구글 딥마인드 CEO 데미스 허사비스는 이런 글을 소셜미디어에 올리며 환호했다. AI가 인간 바둑 최강자를 물리친 역사적 사건을 인류의 달 착륙에 빗댄 것이다.
주말이 지나고 9일 오전(한국 시각)이면 미국 뉴욕에서 빅뉴스가 날아올 것 같다. 창작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Maybe Happy Ending)’이 10개 부문 후보로 지명된 토니상 시상식이 열리기 때문이다. 브로드웨이 무대에 오른 작품을 대상으로 수여하는 토니상은 영국 올리비에상과 함께 세계 공연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트로피다.
K뮤지컬의 브로드웨이 정복은 인류의 달 착륙 못지않게 어려운 일처럼 보였다. ‘어쩌면 해피엔딩’은 최근 미국 드라마 데스크 어워즈에서 작품상·연출상·음악상·작사상·극본상·무대디자인상 등 노른자에 해당하는 트로피들을 쓸어담으며 토니상 다관왕 가능성을 높였다. 상업적 성공을 넘어 까다로운 비평가들까지 사로잡았다는 뜻이다.
‘어쩌면 해피엔딩’은 윌 애런슨(44)과 박천휴(42)가 공동 창작해 2016년 서울에서 초연됐다. 어느 날 스피커에서 흘러나온 ‘Everyday Robots’의 노랫말 “우린 일상 로봇, 휴대폰을 보며 집으로 향하는~”을 듣는 순간 ‘로봇들이 버려진 채 쓸쓸하게 사는 미래’를 상상했다고. 그들이 아이디어를 잊지 않으려고 이메일을 주고받은 게 이 뮤지컬의 출발점이었다.
배경은 2064년 서울. 인간을 돕기 위해 개발된 헬퍼봇(Helperbot)들은, 인간의 외모와 감정을 지녔지만, 세월이 흘러 고물이 됐다. 오지 않는 주인을 기다리는 ‘올리버’와 충전에 문제가 생겨 문을 두드린 ‘클레어’, 두 헬퍼봇이 남녀 주인공이다. 올리버는 구식이지만 순수하고 클레어는 신형이지만 냉소적이다. 두 로봇이 제주도로 길을 떠나며 사랑이 시작된다.
뉴욕타임스는 이 뮤지컬을 리뷰하며 ‘로봇은 로봇에게 사랑일까, 아니면 단순한 연결일까?’라는 제목을 달았다. ‘어쩌면 해피엔딩’은 인간을 돌아보게 하는 거울이다. 올리버와 클레어의 노래를 듣다가 문득 깨닫는다. 로봇의 사랑 이야기가 아니라 인간의 사랑 이야기구나, 사랑의 시작이 상실의 시작일 수 있구나…. 월요일이 기다려진다. 샴페인을 터뜨리긴 이르지만 결과는 ‘아마도’ 해피엔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