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이 쏟아져 나왔다는 곳으로 차를 몰았다. 주말에 집콕하면 손해 보는 것 같은 5월, 행선지가 막막하다면 경기도 용인으로 갈 일이다. 자동차 내비게이션에 ‘호암미술관’을 입력했다. 에버랜드 바로 옆이다. 서울에서 약 1시간쯤 달리면 ‘금강산’을 만날 수 있다.
호암미술관에서는 ‘겸재 정선’ 전시가 한창이다. 정선(1676~1759) 탄생 350년을 앞두고 ‘금강전도’ ‘인왕제색도’ 등 국보 2점과 보물 57점을 비롯해 165점이 한자리에 모였다. 이 화가를 주제로 한 전시로는 사상 최대 규모. 특히 개골산(겨울 금강산)의 수많은 봉우리를 마치 드론으로 내려다본 것처럼 그린 ‘금강전도(金剛全圖)’는 아주 드물게 실물을 영접할 기회다.
보통 미술관에서 관람객들은 이 그림에서 저 그림으로 걸음을 옮기며 나른하게 표류한다. 그런데 이 기획전은 밀도가 팽팽했다. 남녀노소 다양한 관람객은 QR코드로 접속한 전시 설명을 들으며 1층 전시장에 들어갔다. 입장하자마자 심각한 ‘관람 체증’을 경험했다. 대표작 두 점이 나란히 걸려 있었기 때문이다. 왼쪽의 ‘인왕제색도’는 패스하고 오른쪽의 ‘금강전도’ 앞에 섰다.
금강산은 정선이 평생 그린 주제다. 수많은 진경산수화를 남겼는데 으뜸이 바로 ‘금강전도’. 정선은 뾰족한 바위산과 나무숲이 우거진 흙산을 뚜렷하게 대비시키며 어우러지도록 표현했다. 전체 모습을 그린 전도(全圖)는 오랫동안 애호된 형식이다. “회화식 지도와 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어 금강산의 경치와 명소를 상상하는 와유(臥遊) 목적으로” 널리 그려졌다고 한다.
와유(누워서 관람한다)는 집에서 명승지를 그린 그림을 보며 즐긴다는 뜻이다. ‘금강전도’ 위쪽에는 한자로 “두 다리로 답사할 것 같으면 전체를 다 돌아다녀야 되니 머리맡에 두고 다투어서 보더라도 망설임이 없도다”라고 적혀 있다. 삼성문화재단과 간송미술문화재단이 공동 주최한 이번 기획전에 모처럼 나왔을 때 직관할 일이다. 전시는 6월 29일까지다.
‘금강전도’의 마지막 매입자는 호암 이병철. 삼성문화재단은 국가에 기증한 ‘인왕제색도’와 함께 ‘금강전도’ 등 개인이 소장한 정선의 대표작들을 관리해 왔다. 간송미술문화재단은 정선 회화 세계의 전모를 알 수 있는 작품들을 다수 소장하고 있다. 간송 전형필과 호암 이병철은 ‘문화보국’ 정신을 실천했고 수집한 문화유산을 대중과 향유한 선각자였다. 전시를 보고 나오는데 누가 말했다. “그 할아버지 돈 쓸 줄 아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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