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에서 온 편지’를 뒤늦게 읽고 감명을 받았다. 지난해 11월 8일부터 남극 대륙 횡단을 시작한 산악인 김영미 대장이 1786km를 홀로 걷는 여정의 중간중간 음성 사서함에 남긴 말들이다. 그것이 ‘남극에서 온 편지’라는 제목으로 인스타그램에 올라왔고 사람들이 응원 댓글을 달았다.

“남극점 고도가 2840m라 점점 높아져 갑니다. 험난한 길을 잘 견디고 한 발 한 발 헤쳐나가야 하는 상태에 있어요. 오늘은 제 일기장에 적힌 생텍쥐페리의 글을 읽어드릴게요. ‘그렇지만 나를 살린 건, 한 걸음을 내딛는 것이었어. 다시 한 걸음을, 항상 그 똑같은 한 걸음을 다시 시작하는 것 말이야.’ 내일도 똑같은 한 걸음을 다시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12월 23일)

“제 썰매 안에는 크레바스 탈출 장비도 있습니다. 하지만 혼자 크레바스에 빠져서 스스로 탈출하는 것은 쉽지 않죠. 최선의 루트는 가장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남극점을 지나서도 계속 새롭게 매일 걷고 있는 제 다리가 신기하게 느껴집니다. 누워서 배에 손을 올리면 갈비뼈가 만져져요. 살이 많이 빠졌어요. 갈비뼈로 기타 연주를 하면서 노래라도 한 곡 하고 갈까요?”(1월 8일)

라인홀트 메스너

라인홀트 메스너를 인터뷰한 적이 있다. 1978년 세계 최초로 에베레스트(8848m)를 산소 없이 등정했고 히말라야 8000m급 14좌를 완등한 ‘산악계의 전설’이다. 2016년 울주세계산악영화제에 초대된 그를 인터뷰할 때 귀에 꽂힌 말이 있다. 등반에서 가장 어려운 기술이 뭔지 물었을 때였다. 메스너는 “무사히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라고 답했다.

그렇다면 왜 위험한 산에 오를까. “위험은 어디에나 있다. 대도시에 사는 게 에베레스트 정상보다 더 위험할지도 모른다. 나는 준비가 됐다고 느낄 때만 산에 올랐다. 죽을 수도 있는 위험 앞에 깨어 있어야 산을 제대로 경험할 수 있다.” 그럼에도 등반은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와야 완성된다.

집은 우리가 그곳에 있을 때는 좀처럼 감사하지 않는 공간이다. 진정한 가치는 한동안 그것을 빼앗겨야 알 수 있다. 누구는 남극을 동경하지만 남극을 걷는 사람은 집이 그립다. 김영미 대장은 “제자리로 돌아와 걱정하던 사람들에게 안도감을 주고 스스로도 그런 기분을 느껴야 임무 완수”라고 했다. 등반에서 가장 어려운 기술은 ‘무사히 집으로’다.

'무사히 집으로' 돌아온 김영미 대장 /임화승 영상미디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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