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극단이 초연한 연극 '퉁소소리'. /세종문화회관

올해 본 연극 가운데 으뜸을 꼽으라면 서울시극단이 지난달 초연한 ‘퉁소소리’다. 한국연극평론가협회가 발표한 올해의 연극 베스트 3에도 ‘퉁소소리’가 들어 있었다. 협회는 “힘주어 꾸미지 않고 놀이를 하듯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장면을 풀어나갔다”며 “삶에 지친 관객들을 격려하고 위로한 작품”이라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퉁소소리’는 조선 시대 선비 최척이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명·청 교체기에 가족과 이별과 재회를 거듭하는 역경 30년을 담고 있다. 최척은 의병으로 끌려갔다 돌아와 옥영과 결혼하고 정유재란이 터져 다시 이별한다. 옥영은 일본으로, 최척은 중국으로 가게 된다. 둘은 우여곡절 끝에 안남(베트남)에서 상봉하지만 또다시 헤어진다.

퉁소는 최척과 옥영을 재회하게 하는 악기다. 라이브 연주가 애달프다. 각색과 연출을 맡은 고선웅은 “소설 ‘삼국지’를 읽으면 30만 대군이라는 표현에 감동하는데, 들여다보면 다 누군가의 아버지고 아들이다. 지금도 세상은 도처에서 전란 중이다. 위정자들이 전쟁을 결정하지만 나가 싸우는 건 민초들”이라고 했다.

옥영이 왜란으로 일본에 팔려가 남장을 한 채 무역선에서 일하는 장면. /세종문화회관

겉절이처럼 소박하지만 식감이 살아 있는 연극이다. 기세 넘치는 무대는 조선과 일본, 중국과 베트남의 산과 바다를 넘나든다. ‘퉁소소리’를 한마디로 옮기자면 “괜찮아”다. 우리는 평소 꼭 괜찮아서 괜찮다고 말하지 않는다. “괜찮아” 하면서 스스로를 위로하듯이 이 연극에서 “괜찮아”는 “메이관시” “다이조부” 등 한중일의 말로 길게 메아리친다.

‘퉁소소리’는 고선웅이 국립창극단과 작업한 ‘귀토’와도 겹쳐진다. 판소리 수궁가를 현대적으로 비틀었는데 부제가 ‘토끼의 팔난(八難)’. 토끼가 겪는 여덟 가지 고난이라는 뜻이다. 산중에서 부모를 잃은 토끼는 미지의 세계 수궁으로 들어간다. 그런데 맙소사, 뭍이나 물이나 거기서 거기다. 수중 생활도 고달프기는 매한가지. 또 죽을 고비를 넘겨야 한다.

두 작품의 주제는 “이 또한 지나간다”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져도 삶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퉁소소리’는 내년 9월 5~28일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다시 관객을 만난다. 바라건대 새해에는 좋은 일이 생기기를. 옥영의 며느리 홍도는 생존을 위해 3개 국어로 외친다. “메이관시, 다이조부, 괜찮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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