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호가 MLB 서울시리즈에서 시구하고 있다. /스포츠조선

은퇴한 메이저리거 박찬호가 모처럼 야구공을 던졌다. 지난 20일 서울 고척돔에서 열린 MLB(미국 프로야구) LA 다저스와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시즌 개막전을 기념한 시구였다. 현역 시절처럼 61번을 달고 마운드에 오른 그는 두 팀을 합친 ‘파드저스(PADgers)’ 유니폼을 입고 역동적인 와인드업 동작에 들어갔다.

박찬호가 뿌린 공을 받은 포수는 파드리스에서 현역으로 뛰는 김하성. 박찬호는 30년 전 MLB 무대에 데뷔한 첫 한국인이고, 김하성은 한국 프로야구를 거쳐 MLB에 진출한 뒤 아시아 국적 내야수로는 처음으로 골드 글러브를 받았다. 역사적 순간이었다. 한국 메이저리거의 과거와 현재가 뜨겁게 포옹했다.

MLB 통산 124승(98패). ‘코리안 특급’ 소리를 들은 박찬호는 다저스와 파드리스를 거치며 아시아 출신으로는 다승 1위 기록을 세웠다. 부상과 부진으로 마이너리그에 머물 땐 일본의 노모 히데오(통산 123승)를 보며 용기를 냈고 다시 도전했다고 한다. 그는 이날 “시구 하나에 (마치 현역) 경기를 앞둔 것처럼 긴장했다”고 말했다.

박찬호는 IMF 외환 위기 때 ‘한국의 영웅’으로 불렸다. 몇 년 전 인터뷰 자리에서 당시 기분을 묻자 그는 “제가 희망을 준 게 아니라 사람들이 어딘가에서라도 희망을 찾고 싶었던 게 아닐까 생각한다”며 “포기하지 않고 역경을 이겨낸 분들, 국민 모두가 작은 영웅”이라고 답했다.

이번에 소환됐지만 박찬호 하면 한 회에 만루 홈런 두 방을 맞은 장면(일명 ‘한만두’), 동양인을 비하한 상대팀 투수를 향해 이단옆차기를 한 사건도 떠오른다. 그런 일을 겪고 어떻게 평정심을 찾았을까. 박찬호는 “다음 팀, 어느 타자를 어떻게 상대할지 몰입하다 보면 저절로 사라진다”며 “자꾸 과거를 되새기고 필름을 돌리니까 무거워지고 두려워지는 것”이라고 했다.

한때 시속 100마일(160㎞) 강속구를 던졌지만 이젠 70마일이나 나오려나. 그는 은퇴 후 ‘투 머치 토커’로 불린다. 말이 너무 많은 사람이라는 뜻이다. “그 별명 아주 싫어해요. 방송에서 그렇게 편집해서 그렇지, 저 그런 사람 아녜요. 제가 다저스에서 활약할 때....” 그래도 건질 게 있다. 박찬호 최고의 어록은 이것이다. “성공은 남보다 우월해지는 게 아니라 진통을 겪으면서도 성장하는 것이다. 그래서 내겐 124승보다 98패가 더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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