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남부 나폴리만 연안에 있던 아름다운 항구 도시 폼페이는 로마 상류 계급의 휴양지였다. 서기 79년 8월 24일, 베수비오 화산이 폭발했다. 폼페이는 몇 시간 만에 화산재 속에 묻히고 말았다. 수천 명의 죽음과 함께 도시가 지도에서 사라졌다.
1592년 한 농부가 우물을 파다 폼페이 유적을 발견했다. 재앙 당시 모습을 타임캡슐처럼 간직하고 있어 세계를 사로잡았다. 폼페이의 비극은 대여섯 번 영화로 만들 만큼 사람들의 상상력을 건드렸다. 역사에서 퇴장한 폼페이가 다시 등장한 셈이다.
10년 전 개봉한 영화 ‘폼페이: 최후의 날(이하 폼페이)’은 ‘타이타닉’(1998)과 닮았다. 실제로 일어난 비극이 중심이고, 신분을 초월한 사랑 이야기를 덧댔다. 남녀 주인공을 훼방하는 삼각관계도 공통점이다. 타이태닉호는 검투사들이 싸우는 원형 경기장으로, 바다는 성난 불길로 각각 변형됐다. 차이점도 있다. ‘타이타닉’에서 사랑이 끝까지 살아남는 것이라면 ‘폼페이’에서는 함께 죽는 것이다.
”세상에는 수많은 재앙이 있었지만, 이토록 후세에 즐거움을 가져다준 재앙은 드물 것이다. 나는 이보다 흥미로운 걸 본 적이 없다.” 폼페이를 방문한 독일 작가 괴테가 ‘이탈리아 여행기’에 남긴 글이다. ‘폼페이 유물전’이 열리는 여의도 더현대 서울 전시장 벽에도 이 문구가 적혀 있다.
폼페이 유물 127점을 서울에서 마주한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헤르메스의 조각상이 관람객을 맞는다. 제우스의 심부름을 도맡은 전령(傳令)이다. 그는 날개 달린 가죽신을 신어 하루에 만 리 길도 너끈하게 달릴 수 있다. 이승부터 저승까지 오르내린다. 헤르메스 조각상 앞 바닥에 적힌 ‘HAVE’에도 눈길이 멈춘다. 당시 사람들이 안녕을 기원하며 저택 바닥에 새긴 단어라고 한다.
2000년 전 폼페이 사람들은 안녕하지 못했다. 기억은 불완전하고 우리는 망각에 취약하다. 예술은 어떤 사건이나 사람을 붙잡아 두는 장치일 수 있다. 관람객은 폼페이를 덮친 거대한 재앙과 거리를 둔 채 예술품이 된 비극을 감상한다. 슬프고 섬뜩한 일이 아름답고 흥미로운 경험으로 승화되는 순간을 이 전시장에서 맛본다. 괴테 말마따나 어떤 재앙은 매혹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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