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영화 '잠입'(연출 매즈 브루거)의 배우 울리히 라르센 /서울락스퍼영화제

‘특별한 이야기를 가진 평범한 사람’. 울리히 라르센이 건넨 명함에 영어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그는 북한을 농락하고 10년 동안 스파이 임무를 수행한 덴마크 배우다.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무기 거래를 논의했다는 뉴스를 보고 지난해 만난 이 담대한 남자가 떠올랐다.

라르센은 북한의 불법 무기 거래를 적나라하게 고발한 다큐멘터리 영화 ‘잠입(The Mole)’의 주인공이다.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굴에 들어가야 한다. 스페인에 본부를 둔 북한친선협회(KFA)에 가입해 신뢰를 얻고 임원이 된 라르센은 북한과 우간다, 요르단 등지에서 무기 밀매를 시도하는 과정을 카메라에 담았다. 용기와 근성 없이는 만들 수 없는 다큐다.

‘잠입’은 함정수사 기법을 사용했다. 정체가 탄로 날 수도 있는데 목숨을 걸 만한 일이었을까? 라르센은 “북한은 유엔 제재를 받으면서도 무기를 팔아 외화를 벌어야만 했고 나는 그들의 절박함을 역이용했다”며 “북한 주민들이 겪는 고통에 비하면 그렇게 위험하지 않았다”고 했다. 원제 ‘The Mole’은 ‘두더지(스파이)’라는 뜻이다.

다큐멘터리 '잠입' 에서 북한이 몰래 수출하는 무기 품목을 보여주는 장면. /서울락스퍼영화제

2017년 평양의 한 식당에서 북한 당국이 그에게 미사일과 탱크 등 ‘무기 메뉴판’을 보여주는 장면이 압권이다. 스커드 미사일 5발은 1400만달러였다. 북한 관료들과 함께 우간다로 가서 “호화 리조트를 짓겠다”며 섬 구입을 논의했지만 지하에 무기와 마약 생산 공장을 넣으려 했다는 흉계도 폭로한다. 북한은 불법을 숨기려고 ‘삼각 거래’ 수법도 썼다.

두 번 방북해 훈장까지 받은 라르센은 “거룩한 북한을 위한 투쟁을 유튜브에 올리겠다”고 속여 거의 모든 것을 촬영했다. 몰카로 찍은 장면들도 있다. 스웨덴 주재 북한대사는 “혹시 무슨 일이 생기면 우리는 모르는 일”이라고 못 박았다. 2020년 말 이 다큐가 공개되자 북한은 “조작이고 가짜”라고 잡아뗐지만, 영국 BBC 말마따나 “김정은 위원장은 꽤 당혹스러웠을 것”이다.

은퇴한 요리사 라르센은 10년 동안 가족까지 속였다. 그는 “일상의 95%는 나 자신으로, 5%는 스파이로 살아야 한다는 지침에 충실했다”며 “촬영을 마치고 아내에게 진실을 고백하며 현실로 돌아오는 순간이 가장 고통스러웠다”고 했다. ‘잠입’은 통일부가 공모한 북한 인권 증진 사업에 선정돼 오는 20~24일 청주·구미·부산·대구·서울에서 상영회를 연다. 라르센도 방한해 관객을 만난다. 평양의 ‘무기 메뉴판’을 볼 기회다. 상영 일정은 https://sliff.kr/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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