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일 오전 울산 고려아연 온산제련소 원료 창고. 사람 대신 실내 자율주행 드론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드론은 쌓여 있는 원료의 높이를 측정해 입고량을 계산하고, 다음 공정에 맞는 혼합 비율까지 예측한 정보를 전달했다. 예전 같으면 사람이 일일이 확인하던 작업이다.
고려아연은 지난해 보스턴다이내믹스의 4족 보행 로봇 ‘스폿’도 전세계 비철금속 제련소 가운데 가장 먼저 도입했다. 스폿은 초음파 센서와 적외선 카메라, 유해가스 감지기 등을 활용해 온산제련소 내 466개 점검 포인트를 돌아다닌다. 사람이 접근하기 어려운 구역까지 살피며 설비 온도와 가스 유출, 누액 여부 등을 실시간으로 확인한다. 고려아연 관계자는 “스마트 제련소를 만들기 위해 5년전부터 각종 데이터 수집을 시작했고, 지난해부터 로봇, 드론도 생산 현장에 도입했다”며 “임직원들의 AI 이해도와 실무 능력을 높이는 교육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조선·자동차·석유화학 등 주력 산업을 기반으로 성장해 온 울산이 AI를 앞세워 산업 구조 재편에 나서고 있다. 단순한 공장 자동화를 넘어 제조 공정 전반을 데이터 기반으로 바꾸겠다는 구상이다.
울산시는 지난 1월 ‘AI 수도’를 선언하고 전담 조직인 AI수도 추진본부를 신설했다. 조선·석유화학·비철금속 등 공정 복잡도가 높은 산업을 중심으로 AI 공장 모델을 기획·실증하고, AI 도입이 어려운 중소기업을 위해 제조 데이터 표준화 모델 구축도 추진한다. AI수도 추진본부장에는 과학기술정통부 출신 김형수 부이사관을 임용했다. 김형수 본부장은 “AI 관련 국가 예산이 2026년 기준 10조 원을 넘어섰다”며 “울산도 다양한 AI 국책사업을 유치해 제조AI를 실현할 것”이라고 말했다.
AI 산업의 핵심 인프라인 데이터센터 건설도 속도를 내고 있다. 울산시는 지난해 6월 SK그룹과 아마존웹서비스와 함께 남구 미포국가산업단지에 AI 전용 데이터센터를 짓겠다고 발표했다. 부지 면적은 약 3만6000㎡다. 2027년 40MW급 1단계를 가동한 뒤 2029년까지 총 100MW급 규모로 완공할 계획이다. 시는 건설 기간 중 1000여 개의 일자리 창출과, 완공 이후 약 140명의 AI 연구 인력 고용을 기대하고 있다. 데이터센터 주변을 ‘울산형 소버린 AI 집적단지’로 확대해 제조 실증과 연구·교육 인프라를 연계한다는 구상이다.
울산은 한 발 더 나아가 수중 데이터센터 구축도 추진하고 있다. 울산 앞바다 해저 약 20~30m 지점에 서버 모듈을 설치해 10만 대 이상을 수용하는 대규모 시설을 조성하는 방안이다. 해수의 안정적인 수온을 활용해 자연 냉각 효과를 얻고, 전력 소비와 탄소 배출을 줄이겠다는 목표다. 울산시는 지난해 11월 한국해양과학기술원, 한국수력원자력, LS일렉트릭 등 9개 기관과 구축모형 개발 업무협약을 맺었다. 지난달 21일에는 SK텔레콤이 AI GPU 인프라 구축과 서버 운영을 맡기로 하는 업무협약도 체결했다. 울산시는 상용화될 경우 기존 육상 데이터센터 대비 전력 소비를 30% 이상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인재 양성도 병행되고 있다. 울산과학기술원(UNIST)과 울산대는 인공지능 전문 특수대학원을 운영하며 지역 산업과의 연계를 강화하고 있다. 울산대는 지난달 20일 울산테크노파크에서 멀티캠퍼스 ‘유비캠(UbiCam) 4호점’ 개소식을 열었다. 김익현 울산대 교학부총장은 “강의실에서 배운 최첨단 기술이 산업 현장에 바로 적용되는 구조”라며 “대학이 인공지능 등 첨단 기술을 지역 산업계에 발빠르게 전달하는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울산시는 스마트 교통·환경 시스템 구축과 AI 시범도시 유치에도 힘을 쏟고 있다. 중구 혁신도시와 성안동 일대를 중심으로 모빌리티·에너지·생활편의·데이터 등 4개 분야 14개 서비스를 시범 운영한다. 자율주행과 수요응답형 교통(DRT)을 확대해 교통 사각지대를 줄이고, 빈집·상권 분석 등 AI 기반 예측 서비스와 디지털 트윈 기술도 도입할 계획이다.
김두겸 울산시장은 “올해는 울산이 산업 수도를 넘어 세계적인 ‘AI 수도’로 도약하는 분기점이 될 것”이라며 “산업과 행정, 시민 삶 전반에 AI 대전환을 가속화해 울산의 미래 성장 동력을 확보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