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제조업의 심장, 부산·울산·경남(부울경)이 거대한 전환점에 섰다.
조선과 자동차, 기계, 소재 등 국내 제조업을 떠받쳐온 부울경은 글로벌 경기 둔화와 공급망 재편, 기술 패권 경쟁이라는 거센 파도에 직면했다. 한때 ‘공업화의 상징’이었던 공장지대는 저성장과 산업 재편의 압박 속에서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그러나 부울경은 위기를 기회로 삼았다. 해법은 인공지능(AI)이다. 공장을 지능화하고, 산업 데이터를 연결하며, 제조 현장을 최적화하는 ‘AI 대전환’이 본격화되고 있다. 전통 제조업의 기반 위에 디지털 기술을 더해 산업 지도를 다시 그리고 있다.
부산시는 항만과 물류, 행정 전반에 AI를 접목하고 로봇·피지컬 AI를 신산업 전략으로 끌어올렸다. 해양 드론, 로봇, 차세대 배터리 등 첨단 미래 기술을 보유한 부산 기업들은 올해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6’에서 주목받으며 세계 시장에 진출하고 있다. 산업 공간도 재편된다. 부산도시공사는 25일 센텀2지구 도시첨단산업단지의 첫 삽을 떴다. AI와 첨단 조선·해양, 미래 모빌리티 기업을 집적하는 거점을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단순한 산업단지를 넘어, 수도권에 대응하는 디지털 혁신 허브를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울산은 올해 1월 ‘AI수도’를 목표로 전담 조직인 ‘AI수도 추진본부’를 꾸렸다. 조선·석유화학·비철금속 등 공정 복잡도가 높은 산업을 중심으로 AI 공장 모델을 도입하고, 중소기업을 위한 제조 데이터 표준화 모델도 마련한다. AI 산업의 핵심 인프라인 데이터센터도 구축한다. 2029년까지 7조원 규모의 데이터센터를 울산 미포국가산업단지에 조성하고, 국내 최초로 수중 데이터센터 실증에 나선다. 울산 앞바다 해저 20~30m 지점에 서버 10만대를 수용하는 시설을 구축하는 구상이다. 상용화될 경우 기존 육상 데이터센터 대비 전력 소비를 30% 이상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전통 중화학 공업 도시가 데이터 산업의 전진 기지로 변신을 시도하는 셈이다.
경남은 1조원 규모의 ‘피지컬 AI’ 기술 개발·실증의 거대한 실험장이 된다. 이를 통해 제조 현장의 AI 전환에 속도를 낸다. 창원 방위·원자력 융합 국가산업단지 국가전략사업 선정 등을 통해 첨단 산업 생태계 구축에도 나설 계획이다. 한국전기연구원과 한국재료연구원 등 경남에 자리한 국가 연구기관은 전력망과 핵심 소재 기술에 AI를 접목하면서 제조 혁신의 기반을 다지고 있다. 기업 생산 공장과 대학 연구실을 연결한 산학 협력 모델도 자리 잡고 있다. 성과도 나타나고 있다. 작년 국가통계포털이 발표한 ‘지역 소득 통계’에서 2024년 경남의 지역 내 총생산은 151조2000억원으로 경기, 서울에 이어 전국 3위를 기록했다. ‘조방원(조선·방위·원전)’ 주력 산업의 회복과 우주항공 산업의 성장세가 맞물린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부울경의 목표는 단순히 AI 기술을 도입하는 데 있지 않다. 도시 전체를 전통 제조업 도시에서 지능형 데이터 기반 도시인 ‘스마트 도시’로 변화시키는 것이다. 부산에서는 2030년까지 행정과 산업 전 분야에 3700억원이 투입돼 AI 기술이 시민 일상 속으로 스며들 전망이다. 울산과 경남에서도 자율주행과 수요 응답형 대중교통, 빈집·상권 분석, 재난 대응을 위한 디지털 트윈 등 AI 기반 예측·관리 시스템이 확산되고 있다. 산업 혁신과 도시 혁신이 동시에 진행되는 구조다.
부산·울산·경남교육청과 지역 대학들도 미래 세대를 위한 AI 교육에 나섰다. 학생들은 AI를 두려운 기술이 아니라, 함께 일하고 협력하는 도구로 활용하는 법을 배우게 될 전망이다.
박형준 부산시장은 “AI를 산업과 행정 전반에 적용해 부산의 산업 체질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시민이 체감하는 혁신을 만들어 가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