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이고, 송전선이고 다 준비된 울산 울주에 지어주세요.” “저번에 원전 짓겠다는 약속을 어겼으니 이번엔 꼭 영덕이 돼야 합니다.”
정부가 지난 26일 신규 원자력발전소 2기를 건설하겠다고 발표하자 울산 울주군과 경북 영덕군이 유치전에 뛰어들었다. 이미 경쟁이 달아오르고 있다.
29일 찾은 울주군 서생면 행정복지센터 앞에는 ‘새울 5·6호기 유치는 서생면민의 염원’ ‘원자력과 상생하는 서생, 앞장서서 유치하겠습니다’라고 쓴 현수막이 펄럭였다. 서생면 주민들이 모인 ‘신규원전자율유치 서생면범대책위원회’는 이날 울주군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서생면에는 건설 부지가 이미 확보돼 있고 송전망도 깔려 있다”며 “준비된 서생면이 최적지”라고 했다. 서생면에는 현재 새울 1·2호기가 가동 중이고 추가로 새울 3·4호기를 짓고 있다. 손봉락(61) 집행위원장은 “다른 지역에 원전을 조성하면 땅 보상 작업에만 10년 이상 걸릴 것”이라며 “정부 계획대로 2038년 가동하려면 울주에 지어야 한다”고 했다.
대책위는 2023년 서생면 주민 4042명의 서명을 받아 울주군과 대통령실 등에 전달했다. 30일부터는 울주군 전체 주민(22만명)을 대상으로 서명 운동을 벌일 계획이다. 경북 경주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본사 앞에서 ‘촉구 대회’도 열기로 했다.
영덕군 주민들도 다음 달 초 영덕군 원전유치범군민위원회를 출범할 계획이다. 이어 영덕군청 등에서 잇따라 기자회견을 열 예정이다. 이날 영덕읍 석리에서 만난 이미상(66) 이장은 “인구 소멸 위기 지역인 영덕은 산업 기반이 열악해 청년들이 계속 빠져나가고 있다”며 “원전을 유치해 청년 일자리를 늘려야 한다”고 했다. 주민 전정영(83)씨는 “작년 3월 산불로 마을이 초토화돼 100명이 넘는 주민이 아직도 컨테이너에 산다”며 “마을을 재건하려면 원전 유치가 꼭 필요하다”고 했다.
영덕군은 2011년 원전 건설 예정지로 선정됐으나 문재인 정부의 탈(脫)원전 정책에 따라 2017년 사업이 백지화됐다. 영덕군은 “과거 예정지에 다시 원전을 유치할 것”이라고 했다.
정부가 이번에 지으려는 원전은 1.4GW(기가와트) 규모 2기다. 2037~2038년 준공한다는 계획이다. 한수원은 다음 달 전국 지방자치단체를 대상으로 원전 부지 공모에 들어갈 예정이다.
주민들이 ‘혐오 시설’로 통하는 원전 유치에 나선 건 지역 경제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 때문이다.
울주군이 2014년 새울 3·4호기를 유치한 뒤 받은 지원금은 일회성 자금만 1180억원이었다. 여기에 60년간 매년 100억원을 추가로 받는다. 한수원은 주민들에게도 상생협력자금 1500억원을 내놨다.
원전 업계에 따르면, 이번에 신규 원전 2기를 유치하는 지역이 얻을 경제적 이익은 3조9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김진해(67) 서생면이장단협의회장은 “원전이 생긴 뒤 관련 협력업체들이 들어와 청년 일자리가 많이 늘어났다”고 했다. 서생면에서 횟집을 하는 신정희(51)씨는 “새울 3·4호기 공사 현장엔 하루 5000명이 드나든다”며 “원전을 짓는 10년간 손님이 끊이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이진호(55) 대책위 사무국장은 “다른 지역 사람들은 원전이 위험하다고 생각하지만 우리는 원전이 얼마나 안전한지 직접 경험했다”며 “지진이나 산불이 나면 안전한 원전으로 대피해야 한다고 말할 정도”라고 했다.
정부가 짓기로 한 0.7GW 규모 소형모듈원자로(SMR) 1기를 두고도 부산 기장과 경북 경주 등이 경쟁하고 있다. 기장에는 고리(3기)와 신고리(2기) 원전이 있다. 경주에는 월성(3기)과 신월성(2기) 원전이 가동 중이다. 정종복 기장군수는 이날 “SMR은 원전보다 더 안전한 데다 미래 산업으로 떠오르고 있다”며 “기장에는 부지도 있어 바로 착공할 수 있다”고 했다. 경주시는 “SMR 국가산업단지를 만들어 관련 기업을 유치하겠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반대 목소리도 있다. 신규원전반대 울주군 대책위원회 등 3개 단체는 지난 27일 울주군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유치 활동 중단’을 촉구했다. 대책위 관계자는 “서생면과 기장군 일대에는 이미 원전 9기가 몰려 있다”며 “세상에 이런 불안한 곳이 어디 있느냐”고 했다. 영덕핵발전소반대 범군민연대는 “원전 때문에 주민들 간 갈등만 커질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