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에서 발견된 희귀 철새인 호사도요(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와 노랑부리백로, 슴새, 호반새./울산시·짹짹휴게소·황종주 사진가

지난 22일 울산 울주군 웅촌면 회야강가에 버스 한 대가 멈춰섰다. 떼까마귀, 백로 캐릭터 스티커를 붙여 한껏 멋을 부렸다. 초등학생부터 70대까지 12명이 줄줄이 내렸다. 저마다 목에 쌍안경을 걸었다. 망원 카메라를 든 사람도 있었다.

“저기 우아하게 생긴 흰 새가 중대백로에요. 울산에는 이런 백로류가 1년에 8000마리씩 와요. 국내 최대 백로 서식지가 바로 울산이랍니다.”

사파리 모자를 쓴 임현숙 울산시 자연환경해설사가 이렇게 말하자 탄성이 나왔다.

천연기념물인 원앙과 청둥오리, 흰죽지, 흰뺨검둥오리, 비오리 등 철새 수백 마리가 회야강 위로 떠올랐다. “오늘 ‘조복(鳥福)’ 터졌네요!” 임 해설사 말에 웃음이 쏟아졌다.

이 버스는 ‘울산 철새 여행버스’다. 울산시가 2022년 전국 최초로 운행을 시작한 탐조(探鳥) 전용 버스다. 태화강과 동천강, 울주군 온양읍 등 울산의 새 명소를 돈다. 쌍안경과 망원경도 빌려준다. 지난해 2100명이 이 버스를 탔다.

울산 중구 태화강국가정원 일대에서 시민들이 떼까마귀 군무를 지켜보고 있다. /윤기득 사진작가

최근 전국 탐조객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면서 12월 중순까지 예약이 꽉 찼다. 부산에서 온 강다연(23)씨는 “이름만 들어본 철새들을 눈앞에서 보니 신기했다”며 “울산이 자동차, 조선으로 유명한 산업도시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철새가 많은지 몰랐다”고 말했다.

울산은 최근 검독수리, 저어새, 큰부리도요 등 ‘희귀새’가 잇따라 발견되면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탐조객 이진옥(46·경남 양산)씨는 “올 6월 울주군 온양읍 논에서 천연기념물인 호사도요 암컷을 봤는데 너무 예뻐서 잊을 수가 없다”며 “3년간 전국 각지를 다녔지만 울산에서 처음 호사도요를 봤다”고 했다. 이씨 아들 추민준(10)군은 “울산 동구 대왕암공원에서 파란색 큰유리새를 2m 코앞에서 봤다”며 “너무 설렜다”고 말했다.

울산을 찾는 겨울 철새는 한 해 약 10만 마리다. 올해는 최근까지 100종 8만9163마리가 울산에 왔다.

지난 24일에는 회야강과 온양읍에서 국제 보호 조류인 흑두루미 한 마리가 발견됐다. 흑두루미는 세계적으로 1만5000여 마리만 남아 있다.

지난 9월에는 방어진 앞바다에서 알류샨제비갈매기 약 100마리가 발견됐다. 북미 알래스카 등지에서 약 6000㎞를 날아온 것이다.

여름 철새가 겨울까지 눌러 사는 경우도 있다. 윤석 울산시 환경정책과 주무관은 “화려한 머리 깃이 인디언 추장을 닮은 후투티는 여름 철새지만 지금은 겨울에도 울산에서 발견된다”며 “여름 철새인 물총새, 겨울 철새인 흰뺨검둥오리는 이미 울산 텃새가 됐다”고 말했다.

태화강국가정원 일대 상공을 날고 있는 떼까마귀들. /울산시

가장 많이 오는 종은 떼까마귀다. 해마다 약 8만 마리가 울산을 찾는다. 예전엔 흉조로 불렸지만 울산에서는 ‘겨울 진객’으로 대접받는다.

지난 26일 오후 찾은 울산 철새 홍보관 일대에선 떼까마귀 수만 마리를 관찰할 수 있었다. 해 질 녘 불그스름한 하늘을 무대 삼아 군무를 추며 날았다.

박명환 철새홍보관장은 “예전에는 배설물 때문에 떼까마귀를 싫어하는 시민이 많았지만 요즘엔 대부분 반가운 손님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울산시는 다음 달부터 태화강 국가정원에 떼까마귀 군무 생태 해설장도 연다.

울산에서 희귀새가 많이 발견되는 것은 지리적으로 철새들이 쉬어가는 기착지이기 때문이다. 겨울 철새는 매년 11월 월동을 위해 시베리아, 몽골에서 일본, 동남아 등으로 남하하는데 울산이 그 중간에 있다.

도심을 가로지르는 태화강은 먹이도 풍부하다. 태화강은 1970·1980년대 산업화로 오염돼 ‘죽음의 강’으로 불렸으나 요즘엔 은어와 연어, 수달이 산다.

울산시는 2013년 태화강 삼호대숲을 철새 둥지로 지정했다. 사람은 출입 금지다. 철새들을 위한 ‘특급 호텔’인 셈이다.

울산 지역 탐조 동호회인 ‘짹짹휴게소’의 홍승민 대표는 “울산은 산과 강, 바다, 공원 등 서식 환경이 다채로워 그만큼 다양한 새를 관찰할 수 있다”고 했다.

울산에는 ‘새 박사’도 많다. 짹짹휴게소에는 학생, 주부, 회사원 등 80여 명이 활동하고 있다. 울산시는 지난해 ‘새 통신원’ 30명도 뽑았다. 희귀새를 발견해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 지난 5월 새 통신원 조현표씨와 아들 조우진군이 울주군 온양읍에서 국제 보호 조류인 메추라기도요와 붉은갯도요를 발견했다.

새 통신원인 김정순씨는 “새는 보고만 있어도 너무 예뻐서 힐링이 된다”며 “아직도 못본 새가 많아 울산, 창원 등 전국을 다니고 있다”고 했다.

최창용 서울대 산림과학부 교수는 “새에 대한 안목이 생긴 시민들이 희귀새를 찾는 1등 공신”이라며 “반가운 현상”이라고 했다.

울산시는 철새를 활용해 ‘조류 사파리 관광’ 활성화에 나서고 있다. 철새가 많이 찾는 20곳에 QR코드가 담긴 안내판을 세웠다. QR코드를 찍으면 철새 정보를 알려준다. 1월에는 독수리 학교도 운영한다. 독수리에게 먹이 주는 체험을 할 수 있다.

김두겸 울산시장은 “귀한 새들이 울산을 잇따라 찾는다는 것은 그만큼 울산의 생태 환경이 좋아졌다는 뜻”이라며 “생태 관광을 활성화해 지역 경제에도 보탬이 되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26일 울산 옥현초 5·6학년생으로 구성된 철새홍보관 어린이 탐조단이 태화강에서 박명희 생태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탐조를 하고 있다. /김동환 기자
26일 울산 남구 철새홍보관에서 시민들이 떼까마귀 군무를 사진으로 담고 있다. /김동환 기자